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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Jun 12. 2024

부루마블은 사랑을 싣고

최근에 아이들과 여행 중에 머문 숙소에는 다양한 보드게임이 구비되어 있었다. 평소에도 보드게임을 즐겨하는 편이라 아이들은 신이 났다.

그중엔 아이들이 처음 보는 보드게임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부루마블!!


 내겐 부루마블에 하면 떠오르는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서해안 작은 시골마을에 위치해 있었다. 읍내를 가려면 버스를 이용해야 할 정도로 외딴곳이라 동네 친구도 별로 없어 늘 심심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놀거리도 없고, 조용하기만 하던 시골마을에 빅 이벤트가 생겼다.

그건 바로 도시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우리 주인집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이곳으로 엠티를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집 옆 비어있는 방에서 머문다고 했다. 엄마는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왠지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엠티 오던 날 왁지지껄 떠들며 짐 푸는 모습을 나와 동생은 멀찌감치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한 오빠와 눈이 마주쳤고, 그 오빠는 내게 와보라고 손짓을 했다.

"몇 살이야?"

"4학년이요..."

"어디 살아?"

" 요 옆에요.."

"아. 진짜?? 심심하면 놀러 와^^"

스무 살 오빠가 초등학교 4학년에게 인사치레로 던졌을법한 그 말을 덥석 믿고 진짜  놀러 갔다.

"꼬마야. 여기 왜 왔니?"

의아해하며 묻는 어떤 언니를 제치고 오빠가 말했다.

"응. 내가 놀러 오라고 했어. 일루 와~"

그 순간 낯을 가려 쭈뼛대는 동생의 손을 놓고 얼른 오빠 옆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함께.... 부루마블을 했다. 처음 해보는 게임이었지만 곧잘 하는 나를 보며 오빠는 귀엽다며 머리도 쓰다듬어줬다.


그날밤 나는 엄마에게 무지하게 혼났다. ㅠㅠ

거기가 어딘 줄 알고 거기 네가 껴서 노느냐고..

 "오빠가 오랬단 말이야. 치 알지도 못하면서!!"


다음날 오빠는 친구들과 해변가에서 놀고 들어왔는데 어깨며 등에 잔뜩 화상을 입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집으로 달려가 구급상자를 뒤져 화상 연고를 가지고 오빠에게 달려갔다. 오빠는 또 한 번 머리를 쓰다듬어졌다. 그 손길이 어찌나 황홀했는지 모른다.


"엄마! 누나 오늘도 그 형아들 있는데 갔다!!!"

동생이 일러도, 엄마가 야단쳐도, 오빠를 끊을 수 없었다. 김유신 장군은 말목을 잘랐다지만, 난 내 두발을 자를 수도 없고 ㅠ


그러나 야속하게 시간은 흘렀고 오빠가 떠나야 하는 날이 왔다.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에 그날은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동생이 날 불렀다.

"누나! 형아가 와보래!!"

 그 한마디에 단숨에 달려갔더니 오빠는 짐을 꾸리고 있었다. 그리고 날 보고 첫날처럼 손짓을 했다.

"덕분에 너무 잘 놀고 가네! 고마워서 어쩌지?"

그리면서 내게 부루마블을 건넸다.

"이거 잘하더라. 동생하고 재미있게 해!"

"저.... 편지하면 안 돼요?"

"편지? 그래. 오빠가 주소 알려줄게"

그러면서 수첩에 주소와 이름을 써줬다.

"혜원이 아니라 해원이야. 바다 해자야"

아직도 기억하는 그 이름.


오빠가 떠난 뒤 곧바로 편지를 썼고 얼마 후 오빠에게 답장이 왔다. 그렇게 몇 번의 편지를 주고받았고 오빠가 보고 싶을 때마다 동생과 열심히 부루마블을 하며 그때의 추억을 떠올렸다.


요즘 세상 같으면 겁도 없이 거길 어디라고 가냐며 혼냈을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참 순수했던 시절이다.

지금 생각하면 대학생이 초등학생에게 편지까지 써주다니... 참 순수하고 기특한 청년이구나 싶다.

벌써 삼십 년이 지난 일인데 오빠의 이름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참 신기하다.

아마 그게 나의 첫사랑.. 까지는 아니고 첫좋아함. 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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