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퍼엄마 Aug 13. 2024

엄마의 선물

"쟤는 왜 저렇게 동생을 질투하고 서운해하나 몰라~"

방학을 맞이해 산후조리원 동기들과 아이들과 물놀이를 갔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노느라 정신이 없었고 오랜만에 만난 우리도 수다를 떠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아이들로 향했고 요즘 동생을 질투하고 삐지는 첫째 이야기를 했을 때였다.

"야. 나 같아도 그러겠다!! 너무 티가 나는데?!" 의외로  친구들은 첫째 편을 들어주었다.
"내가 뭘??" 하며 억울해하려는데 둘째가 나를 찾았다.

"웅 다이니 와쪄?!  뭐 필요한거 이쪄?? 우리 애기 엄마 없어도 너무 잘 놀구 오구오구 다컸넹!!"
자동적으로 혀가 반으로 접혔다.
"엄마 나 배고팡. 뭐좀 머꼬 다시 놀꼬얌~"
딸도 덩달아 혀가 반토막이 된다.

그러다 동생을 찾아 나선 첫째가 다가온다.
"민재 왜?"
순간 저절로 머쓱해졌다.
내 말투가 이렇게 달랐나?

인간은 근본적으로 더 작은 것에 대한 애착이 있는 듯하다. 동물도 작은 새끼일수록 더 귀여운 게 당연하다며 합리화를 해보지만... 첫째가 서운해할 만도 하다.
하긴.. 나도 늘 그랬는걸..

어릴 적에 최수종과 김희애 주연의 '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가 유행이었는데 주인공의 이름이 아들은 귀남이(최수종), 딸은 후남이(김희애)였다. 당시 엄마의 팔베개에 누워 티브이를 보고 있던 동생이 "엄마, 저기 나오는 후남이 꼭 우리 누나 같다."라고 말했고 나는 약이 올라 눈을 흘기며 동생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마주 보며 웃는 엄마와 동생의 모습은 신데렐라의 계모와 언니들만큼이나 얄미웠다.

시험에서 한 개 틀려 95점을 맞아도 칭찬은커녕, 백 점 못 맞았다고 혼이 났다. 친구랑 싸우고 속상해서 울기라도 하면 '네가 성격이 이상해서'그렇다고 혼이 났다. 동생이랑 다투면 '네가 인정머리가 없어서' 그렇다고 혼이 났다. 집에 내 편은 없었다.

누구보다 가깝고 살가운 모녀사이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이도 있다. 내기 엄마 키를 넘어설 때쯤엔 나도 엄마에게 지지 않았다. 서로를 잘 안다는 게 가끔 독이 될 때있다. 못된 말, 상처되는 말만 골라서 찔러댔다. 상대를 더 아프게 하는 것이 내가 덜 아픈 방법인 줄 알았을 때였다.
엄마는 "스트레스받아 너 때문에 암에 걸렸다."라는 말로 우리 싸움의 종지부를 찍고 최종 승자가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꼭 묻고 싶은 말이 있었다.
"엄마는 왜 동생만 예뻐했어? 내가 더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 듣고 동생은 공부도 못하고 사고만 치잖아 그런데 왜 엄마는 동생만 예뻐했어?"

스무 살의 나 대신 열 살의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
"너는 어릴 때부터 똑똑하고 야무졌어. 어린 게 아주 영악해서 어디 가서 주눅 들지 않고 할 말도 다하고.. 네 동생은 안 그랬어. 숫기도 없고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공부도 못하고 어디 가나 누나랑 비교당했어. 그래서 엄마가 편 들어줬지. 엄마라도 그렇게 해줘야 나쁜 길로 가지 않을 것 같았어. 네 동생 가졌을 때부터 아빠랑 사이가 안 좋았어. 동생 뱃속에 있을 때부터 맨날 싸우고 울고 했는데 그래서 얘가 좀 부족한가.. 싶어 미안했지. 너한테는 기대가 커서 혼만 내고.."

그때는 이 말을 들으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핑계라고만 생각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도 20년이 넘었다. 이제 나도 아들 하나, 딸 하나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둘째가 뱃속에 있을 때 신장 모양이 기형이라는 소릴 들었다. 아이를 낳고도 나만 퇴원을 하고 아이는 바로 데려오지 못했다.

둘째라고 뱃속에서부터 너무 무심하게 행동했나 싶고, 엄마한테 지은 죄를 이렇게 받는 건가 싶고 매일 내 탓을 하며 지냈다. 그러다가도 '신장이야 두개니까 까짓거 내꺼 하나 떼주면 되지!!' 라며 긍정회로를 돌리며 정신승리하 버텼다.

아이가 태어나고 소아 신장 쪽으로 유명한 선생님이 계시다는 신촌 세브란스로 병원을 옮겼다. 3개월마다 6개월마다 추적관찰을 하다 작년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둘째가 좀 아프기라도 하면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식겁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내 앞에서 울고 까부는 것마저도 감사할 따름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끝내 모른 척하고 싶었던,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를 이해하는 순간이 온다. 물론 우리 첫째가 느꼈을 설움도 이해가 간다.

아들의 모습에서 어린 내가 보인다. 딸을 보면 엄마가 떠오른다. 그 시절  엄마가 느꼈을 마음을 떠올려본다. 영원히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엄마와 나 사이를 우리 아이들이 이어주고 있다.

딸은 엄마가 내린 벌이 아니라 엄마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중한 인연 만들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