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독서

by 슈퍼엄마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낯선 지역에 와서인지 출산과 육아가 내겐 무척 버거웠다. 양가는 물론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남편에게도 도움을 요청하기 쉽지 않아 육아는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연고 하나 없는 곳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더욱 외로웠다. 게다가 작은 생명을 책임지기엔 내가 아직 단단하지 않은 것 같았다. 문득문득 두려움이 밀려왔고 그럴 때마다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처음 엄마가 되었을 때의 낯설고 당황스러운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아기보다는 일반 가전제품이 더 상세한 취급 설명서와 함께 온다'라는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병원에서는 a4용지 두 장 짜리 신생아 케어법을 건넬 뿐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어떤 가전제품보다 다루기 까다로웠다. 작동방법조차 터득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 헤매는 날이 계속되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며 대체 왜 우는지 알 수 없어 나도 같이 울어버린 기억이 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면 '나는 엄마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인가' 하는 죄책감을 느끼다가 '그래도 내가 엄마인데..' 하며 다시 힘을 내보기도 했다.

힘들게 아이를 키우면서 '내 인생에 둘째는 없다!'다짐했었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 이랬던가?!
어느새 걷고 말하고 세상 누구보다 예쁜 내 아이를 보면서 이전의 고생을 다 잊고 또다시 아이를 낳게 된다.
처음보다는 덜 당황스럽고 덜 우울했지만 육아는 끊임없이 나의 한계를 시험했다.

첫째를 키우면서 내가 왜 이렇게 우울하고 힘들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매 순간 나라는 사람이 점점 희미해지고, 오로지 아이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 같았다. 본질적인 '나'는 사라지고 '엄마'라는 역할만 남은 기분이었다.
책을 좋아하던 나는 어느새 아이 그림책과 육아서만 읽고 있었다.
머릿속 생각들을 마지막으로 글로 옮긴 게 안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둘째 육아를 앞두고 나는 결심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우울한 엄마 대신 행복한 엄마가 되겠다고.

그래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이가 잠들면 그 옆에서 틈틈이 읽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운명 같은 책을 만났다.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

제목부터 내 이야기 같아 절로 손이 갔다.


이 책의 저자는 육아를 하는 중에도 꾸준히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졌단다. 뿐만 아니라 독서모임까지 운영하며 현실적인 돌파구를 찾았고 그 결과 엄마라는 역할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었다.
평범한 엄마였던 그녀는 독서모임을 통해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면서 지금의 작가가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 또한 삶의 변화를 꿈꾸었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감기는 눈을 부릅뜨고 책을 읽으며, 그녀처럼 '나'를 찾고 싶다고 간절히 소망했다.

내친김에 그녀처럼 독서모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아이가 아직 100일도 안되었을 무렵이라 독서모임에 참석하기 어렵다고 생각되어 온라인으로 독서모임을 만들었고 2년간 모임을 지속했다.
그리고 단순히 독서로 끝내지 않고 서평을 쓰며 생각을 정리했다. 같은 책을 읽고 여러 사람과 생각을 나눌수록 새로운 시각을 얻는 건 물론이고 사유의 폭이 넓어지는 즐거운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어떤 날은 내내 책 생각만 했고, 또 어떤 날은 책 속 문장에 들떠서 희열을 느낀 적도 있다. 덕분에 나는 엄마의 역할을 내려놓고 온전하게 '나'를 찾을 수 있었다.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 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내 삶의 수많은 조각을 하나씩 맞춰나가는 일이라는 것, 엄마라는 역할은 내가 맞춰야 할 퍼즐의 한 조각일 뿐'

나는 아이를 위해 나를 희생하거나 성장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보단 오히려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도 내가 책을 읽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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