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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r 18. 2019

프랑스 친구 생일파티에는 먹을 게 없다.

생일 파티는 먹으러 가는 게 아니라 놀러 가는 것

작년 9월에 뭄바이 프랑스 학교에 입학을 했다. 아이들도 나도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에게 적응하느라 조금씩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러다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둘째 소은이 반 친구의 생일파티 소식이었다. 생일 파티에 참석하면 그동안 교류하지 못했던 부모들과 서로 소개도 할 수 있고,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꼭 참석하려고 한다. 방글라데시에 살 때 친구들 생일파티에 몇 번 가 봤었다. 대부분 방글라 현지 친구들의 생일 파티였는데,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진 음식과 놀거리, 볼거리가 가득했었고, 집으로 돌아올 때 받는 구디 백(goody bag)을 들고 신나게 집으로 돌아왔었던 기억이 가득했다. 이번에도 즐겁게 생일파티를 즐기고 신나게 구디백을 들고 올 생각에 들떠있었다.

생일인 아이는 알렉이었다. 알렉의 집은 뭄바이에서 가장 고층 빌딩이었다. 그 빌딩 현관에 들어선 순간, 우리는 말을 잃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지인들 집이 가득한 동네와는 차원이 다른 빌딩이었다.

"엄마, 꼭 호텔 같아. "

정말, 그 빌딩의 저 층은 호텔로 사용되고 있었고, 고층은 주택으로 사용되고 었다. 이렇게 좋은 집에서 치러지는 생일 파티는 얼마나 근사할까? 아이들도 나도 생일파티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생각에 점심을 굶고 왔다. 뭔가 움츠러드는 게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구경한다는 생각에 뭔가 가슴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알렉의 집에 도착했다. 이미 여러 친구들과 부모들이 도착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놀이방으로 가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부모들은 거실에 모여 서로서로 이야기를 했다. 난 처음 본 사람들에게 소개를 하고 소파의 한쪽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다행히 친한 친구 두 명이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배가 고팠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은 맥주와 주스였다. 얼른 맥주 한 캔을 집어 들고 들이켰다. 내 두 아이가 내 곁을 서성이며 말했다.

"엄마 배고파......."  그런데 먹을게 보이지 않았다. 알렉 아빠가 건넨 사탕은 아이들이 썩 좋아할 만한 맛이 아니었다.

조금 지나니 알렉의 엄마가 팝콘을 들고 나왔다.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와 게눈 감추듯 팝콘을 먹어 치웠다. 그 사이 나는 맥주 한 캔을 비우고, 커피 한 잔을 들이키고 있었다. 배가 고팠다.

조금 후에 알렉의 엄마가 크레페(프랑스식 팬케이크)를 들고 나왔다. 크레페에 누텔라를 발라 아이들에게 한 장, 한 장 나눠주었다. 평소에 잘 먹지 않던 소은이도 배가 고팠는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지안이는 어느새 한 장을 다 먹어 치우고, 한 장을 더 받아왔다. 그렇게 아이들끼리 모여서 놀다가 생일 케이크가 나왔고, 촛불을 켜고 노래를 불렀다. 촛불을 끄고 케이크를 잘라 나눠먹었다.(알렉 엄마가 직접 만든 브라우니 케이크이었다.)

케이크를 조금 먹고 구디백을 들고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구디 백에는 프랑스에서 온 사탕(아이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과 작은 장난감이 들어있었다.   집에 돌아온 우리는 김과 김치에 밥을 먹었다. 그렇게 잔뜩 기대했던 생일파티가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몇 달 후 다른 친구의 생일 파티가 있었다. 한 번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었는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역시나 로흐의 생일 파티에도 맥주와 주스, 사탕이 있었다. 좀 달랐던 것은 로흐 부모님이 게임을 준비해서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즐겼다. 음악을 틀면 춤을 추고, 멈추면 함께 멈춰야 하는 게임을 하면서 신나게 춤을 추었다. 아이들 눈을 가리고 벽에 이름 붙이기 라던지, 우리나라의 박 터트리기 같은 게임이라던지.......

신나게 게임을 하고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고 노래를 부르고 함께 캐이크를 나눠먹고 그리고 생일 파티는 끝났다. 그제야 알았다. 이게 프랑스식 생일 파티라는 것을.......



며칠 전, 큰 아이 지안이 친구의 생일 파티가 있었다. 평소에 소은이네 반 엄마들과는 교류가 많이 있었지만, 지안이반 엄마들과는 친하지 않아 내심 기대를 했다. 이번 기회에 좀 친해져서 자주 연락을 하며 지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소은이를 남편에게 맞기고 지안이만 데리고 친구의 집으로 갔다. 특별한 코스튬을 준비해서 오라는 말에 얼마 전에 산 드라큘라 망토를 하나 걸치고 갔다. 그 집에 도착하니 이미 여러 친구들이 공주로, 기사로, 괴물로 또는 말로 분장을 해 놀고 있었다.

옥 성스 엄마가 나를 보며 말했다.

"5시 반에서 6시 사이에 데리러 오면 됩니다. 아이들은 여러 게임을 할 거예요."

이건 뭔 소리?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그러고 보니...... 그 집에는 아이들만 가득하고, 부모들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 아이들만 놔두고 자기들 볼일을 보러 간 것이었다. 순간 당황을 했다. 나도 나갔다 와야 하나? 밖에 가서 시간 좀 때우고 올까?

"아, 그럼 아이에게 물어볼게요."

지안이는 갑자기 낯선 집에 혼자 남겨지는 것이 싫다며 절대 엄마를 못 가게 했다. 결국, 난 혼자 그 집에 남기로 했다.

"믈론, 여기 있어도 돼요. 그런데 부모들은 위한 프로그램이나 먹을 게 없어요."

"아 네, 괜찮아요. 전 그냥 여기 있을게요. 지안이가 처음이라 많이 낯설어해서요."

몇 번의 경험으로 이미 집에서 밥을 든든히 먹고 왔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 거실 소파에 앉아서 친한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 마이 갓, 나 지안이 친구 생일 파티에 왔는데, 부모들은 다들 가버리고, 나 혼자 여기 있어. 여긴 프랑스 같아. 프랑스 말 밖에 들리지 않아. 나 어떡하지? 난 지안이 때문에 여기 있어야 하는데,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야."

친구들은 활짝 웃는 이모티콘을 보내며 한마디 했다.

"Good luck!!"



지안이는 프랑스 아이들 사이에 껴서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곧 게임이 시작되었다.

옥 성스의 엄마는 여왕 옷을 입고 왕관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두 팀으로 나뉜 아이들은 쪽지를 하나씩 찾아야 한다. 쪽지를 하나 찾으면 거기에 메시지가 있다. 메시지에 따라 다른 쪽지를 찾아야 하고, 보물 지도를 찾아야 한다. 마지막에 그 보물 지도를 보고 보물 상자를 찾는 게임이었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온 집안을 삿삿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 무리에 끼어 지안이도 뛰어다녔다. 여기저기를 들추고, 찾아다니고 소리를 지르고 난장판이었지만, 매우 즐거워 보였다.

드디어 마지막, 보물상자를 찾았다. 그 보물 상자 안에는 쿠키가 들어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보물을 찾아 돌아다니는 내내 여기저기 어슬렁 거리고 소파에 앉아서 메시지를 보내고, 물 한잔을 얻어 마셨다.

드디어 케이크가 나왔다. 이 역시 옥 성스 엄마가 직접 만든 브라우니 케이크였다. 생일 축하 노래를 프렌치로, 영어로, 힌디로 마지막으로 한국말로 불러주고 촛불을 껐다. 그날 지안이가 먹은 것은 쿠키와 브라우니 케이크와 코카콜라 2잔이었고 난 물 한잔이 다였다.


집에 돌아오는 길,

"지안아, 재미있었어?"

"응, 재미없을 줄 알았는데 재미있었어."

먹을 게 없었어도 아이는 충분히 즐거웠다고 말했다. 우리는 집에 와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프랑스 친구들의 생일 파티에는 먹을 게 없다. 집에서 미리 든든히 먹고 가야 한다. 그래야 친구들과 게임을 하고 신나게 뛰어놀 수 있다. 내가 생각했던 생일파티와는 전혀 달랐다. 아이들을 위해 게임을 준비하고, 놀거리를 제공하면 아이들은 자기들끼리도 잘 놀았다.

상다리 부러지게 음식을 차려놓고, 멋지게 풍선과 리본으로 장식을 하고, 놀거리는 물론 즐길거리, 먹을거리를 끊임없이 제공해야 하는(내가 알고 있던) 생일 파티가 아니었다. 프랑스 사람들의 생일 파티에 참석해보고 그들의 소소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음식을 먹을 때 디저트, 본식, 후식으로 나누어 한 접시에 한 음식만 올려 먹는다. 그리고 1시간이 넘게 식사를 한다. 그게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생일파티에는 그런 예의가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간단한 간식과 게임이 존재한다. 그들의 문화를 존중한다.


단지, 생일 파티를 다녀온 후 너무 피곤 해 쓰러지듯 잠이 들어버렸다. 내가 게임을 한 것도 아닌데 너무 피곤했다. 아마도, 친한 사람도 없고, 내 언어가 아닌 영어와 프렌치만 잔뜩 들리는 그 공간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생각했다.

하루 종일 한국말이 아닌 영어와 프렌치로 말해야 하는 내 아이들은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까? 그제야 아이들이 더 기특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의 피곤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생일 파티에서 구디백은 받을 수 없었지만 좋은 교훈을 하나 얻었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더 많이 칭찬해주고 격려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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