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스튜디오 생존기 #02
창업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업자등록을 하고 스튜디오 명함을 지갑 안에 두둑이 넣어두었다. 쓸 일이 없어도 가끔 명함을 꺼내 보면 괜스레 뿌듯했다. 막 시작한 디자인 스튜디오에 알아서 일을 주는 곳이 있을 리 만무했지만 운이 좋게 지인들에게 자잘한 일들을 받았다. 협동조합의 브랜딩과 간판 작업을 시작으로 지역 공단의 다이어리 작업과 소상공인 홍보책자 등을 작업했다. 작은 규모의 일들이었지만 하나하나씩 늘어가는 포트폴리오와 자체적으로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면서 점차 안정적으로 가고 있었다. 1부터 100까지 가는 과정들 하나하나가 직장생활에서는 얻지 못하는 소중한 경험들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문제점들도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다.
동업자인 동료와 자주 다퉜다. 디자인 취향이나 방향성은 비슷했으나 성향이 달랐다. 같이 동업을 해보기 전에는 몰랐을 일이다. 주위에서는 그렇게 다툴 거면 차라리 갈라서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일을 해야 할 시간에도 다툼에 지쳐 손을 못 댄 적도 있을 정도였으니,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했다. 다투고 화해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서로의 영역에 대해서 인정하기로 했다. 각자 부족한 부분이 있었고, 그 부분을 서로가 채워가고 있었다. 회사에서 서로를 만났다면 다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동업자는 전 회사 직속 선배로 같은 나이였지만 나보다 경력이 훨씬 많고, 항상 뒤에서 문제해결을 도맡아하는 능력자였다. 같은 팀으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작은 의견 충돌조차 없었으니 그야말로 찰떡궁합이었다.(실제로 동료운을 봤는데 찰떡궁합으로 나왔다.) 싸우며 알게 된 사실은 직장생활 때 했던 프로젝트들이 전혀 절실하지 않았다는 것. 다툴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고,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지만, 지금 이 순간, 더 절실하기에 다투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큰 일에 목메다. 하나의 일로 끝나지 않고 다음으로 이어지는 일들이 많아야 했다. 자금이 계획적으로 운용되기를 바랐고, 작은 일들보다는 큰 일들에 힘을 쏟고 싶었다. 하지만 큰 일들로 이어지는 일이 생각보다 적었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실수들이 많아졌고 실수들을 해결, 관리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세금 계산과 제작 일정, 처음 제안하는 매체와 한참 선배 격인 디자이너 출신 클라이언트와의 미팅 등, 작은 일에도 불안과 긴장을 오르내렸다.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매번 새로운 일을 가지고 와야 하는 부담감도 동시에 느꼈다. 작은 일부터 단단하게 다지면서 나아갔어야 했다. 정해진 업무를 하고 퇴근하는 직장 생활을 떠올렸다. 관리와 운영까지 도맡아 했던 팀장과 실장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안정감에서 이어지는 게으름. 통장에 조금씩 돈이 쌓이고 일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면서 안정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대로라면 천천히 성장하는 스튜디오의 모습을 내비칠 수 있으리라 '섣불리' 생각했다. 평균을 낼 수 없을 만큼 수입이 들쭉날쭉했고, 지속적으로 나가는 고정지출을 간과한 체 달마다 월급을 챙기며 일이 없는 달은 '0'이 하나 없어지는 통장을 지켜봤다. 일이 없을 때는 편하게 쉬자라는 말은 허울에 지나지 않았고, 아등바등 살 길을 찾으려 이리저리 기웃댈 수 밖에 없었다.
여전히 수입으로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잡무들이 넘쳐나지만, 하나씩 체득하며 배워가고 있다. 지역에서 자신의 것을 하며 지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잡지를 만들면서 간접적으로 그들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고민들을 경험했다. 그들 역시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그러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순간이 그 어느 때보다 값지게 느껴졌다. 우연히 한해동안 가장 행복했던 일에 대해 얘기하는 순간이 있었는데, 고민할 것도 없이 나의 일을 시작했다는 것,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체로 담아냈던 순간, 마음 맞는 동료(친구)와 한 껏 들뜬 체 디자인 이상론을 펼치며 일한 것을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