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인물과 흥미진진한 사건
외계인이 지구인의 습성을 관찰한 일지가 있다면 ‘이야기를 유난히 사랑하는 종족’이라는 항목이 한 자리를 차지할 게 분명하다. 지구인은 꼬꼬마 시절 동화 듣기부터 시작해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여가의 상당 시간을 남의 이야기를 듣는 데 쓴다. 형태는 책·소설·영화·드라마·유튜브·뉴스·블로그 등으로 다양하지만, 남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본질은 비슷하다.
지구인들이 생각하는 이야기란 어떤 모습일까? 조금 가물거리긴 하겠지만, 중학교 때 국어 시간을 떠올려보자. 이야기는 ‘인물, 사건, 배경’으로 구성돼 있다고 배웠다. 특정한 시간과 공간이 등장하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과 배경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일어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조선 시대에 유명한 상인인 김덕순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살던 대로 쭉 잘 살았습니다’로는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매력적인 이야기란 어떤 모습일까?
첫째, 매력적인 캐릭터(인물)가 있어야 하고, 둘째, 흥미진진한 상황(사건)이 있어야 한다. <반지의 제왕>처럼 세계관, 즉 배경이 뛰어난 이야기도 있지만, 그 이야기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호빗족 등 다양한 등장인물)와 흥미진진한 사건들(반지의 파괴 여정)이 없었다면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매력적인 이야기의 요소: 매력적인 인물 + 흥미진진한 사건
첫째, 매력적인 캐릭터부터 살펴보자.
우리가 이야기 속 인물에게 매력을 느끼고 마음을 주게 되는 시점이 언제일까? 바로 ‘남 이야기 같지 않다는’ 기분이 들 때다. 우리와 공통점이라곤 없을 것 같은 인물이라도 친숙한 기시감이 느껴지면 시선을 떼기가 어렵다.
이야기 속의 주요 등장인물이라면 공통으로 가진 특징이 바로 무엇인가에 ‘열망(desire)’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열망의 종류는 성공, 돈, 사랑, 가족, 행복, 존재감, 취업, 결혼, 복수, 회복, 소속감, 성장, 인생의 의미 등등 다양하다. 창작자는 이 등장인물이 왜 이런 열망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를 여러 겹의 서사를 입혀서 보여준다.
서사의 개연성이 와닿을수록 사람들은 등장인물에 마음을 뺏긴다. 사실은 자신도 그런 열망을 마음 깊이 품어본 적이 있으므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지켜보며 응원한다. ‘그들이 열망을 이뤘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라는 간절한 심정으로.
둘째, 우리가 좋아하는 흥미진진한 사건은 어떤 것일까.
다양한 요소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중요한 건 뻔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가난한 어린 시절이 한이 되어서 돈을 열망으로 품은 주인공이 ‘성실하게 일해서 돈을 벌었다’라는 서사는 누가 들어도 지루하다. 명절에 엄마 친구 아들의 서사로나 적당하지 매력적인 이야기로서는 실격이다.
우리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야기에는 의외성이 있어야 한다. 하다못해 ‘가난이 한이 되어 돈을 열망으로 품은 주인공이 위조지폐의 달인이 되어 베트남 대기업의 대주주가 되다’ 같은 스토리라면 황당하더라도 이야기로서의 가치가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매력적인 이야기의 요소: 매력적인 인물 + 흥미진진한 사건
▶ 매력적인 인물: 열망에 깊이 공감될 것
▶ 흥미진진한 사건: 누구나 생각할 만한 흐름이 아니라 의외성이 있을 것
세계적으로 흥행한 <오징어 게임>을 예로 들어보겠다. 주인공은 이정재가 연기한 ‘기훈’이다. <오징어 게임> 1화를 본 사람은 순식간의 기훈이라는 인물의 열망에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기훈에게 누구나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부여해서 그 인물에 애정을 느끼도록 창작자가 설계했기 때문이다.
• 인물: 사회적으로 실패하고 희망이 없는 기훈
• 열망: (1차 열망) 돈을 많이 벌어서 성공한 인생
• (2차 열망) 사랑하는 존재(딸, 어머니)를 지켜주고, 그들에게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
• 열망의 좌절: 돈 때문에 딸을 더는 못 보게 되고, 어머니는 당뇨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목숨이 위험할 지경
1차 열망은 겉으로 보이는 피상적인 꿈, 2차 열망은 마음속 깊이 품은 진짜 내면의 꿈이다. 처음에 우리가 기훈을 봤을 때는 돈만 생기면 도박장에 가고, 나이 든 어머니에게 빌붙어 사는 사회적 루저라고 생각하며 약간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도 그가 딸과 이웃들에게 다정한 성품인 걸 알게 되면서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다. 그러다가 그가 오직 돈 때문에 사랑하는 존재(딸, 어머니)를 잃을 지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는 말할 수 없이 짠해진다.
노력도 없이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1차 열망에는 거리를 두었지만, 사랑하는 존재를 지키고 싶어 하는 2차 열망에는 누구나 마음이 흔들린다. 돈 때문에 소중한 걸 포기해야 했던 좌절감, 소중한 이에게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고 싶었지만 초라함을 느꼈던 순간은 누구나 조금씩이라도 느껴본 감정이니 말이다.
자, 이제 기훈의 이야기는 비로소
‘남 얘기 같지 않은’ 상황이 됐다.
드디어 매력적인 캐릭터가 완성된 셈이다.
만약 이 상황에서 기훈이 돈을 벌기 위해 강도질을 하거나 절망감에 세상과 담을 쌓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빠르게 식을 것이다. 너무 뻔한 전개이고 그런 캐릭터라면 마음을 줄 필요도 없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은 의외성을 보여준다. 기훈 앞에 456억 원의 상금을 타기 위해 목숨을 걸고 참여하는 게임을 들이민 것이다. 심지어 동심 가득한 어린 시절에 즐겼던 놀이를 종목으로 선택해서 말이다.
피가 낭자한 잔혹 동화 같은 아이러니에 우리는 눈이 커진다. 그리고 생각한다.
‘혹시 저런 순간이 온다면,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그리고 사랑하는 존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게임에 참여하기로 한 남자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생긴다. 착해빠진 성격으로 핏빛 낭자한 곳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그의 고군분투를 보면서 손에 땀을 쥐고 응원하게 된다.
이게 이야기가 가진 힘이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흥미진진한 사건으로 당신의 마음은 이제 ‘남 얘기 같지 않은’ 지경에 이르렀다. 지구인들은 일단 이야기 속 인물에게 깊이 공감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홀린 듯이 따라가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너무 궁금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결국 잘 사는지 어떤지.
여기까지는 매력적인 이야기의 특성입니다. 이 특성을 기억하며 다음에 이어지는 좋은 아이디어의 요소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어지는 글은 아래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s://brunch.co.kr/@mentorgrace/86
* 출처 : <일하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박소연, 더퀘스트
* 책 정보 :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2338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