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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연 Jul 21. 2022

우리는 감정에 맞는 얼굴 표정을 제대로 지을 수 있을까

지레짐작이 위험한 이유

얼굴은 과연 거짓말을 하지 않을까


만약 당신은 다음의 상황을 만난다면 원하는 표정을 능숙하게 지을 수 있으신가요?



Case 1.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정성스러운 선물을 내밀었다. 당신은 친구의 마음 씀씀이에 고마운 마음과 자신은 미처 준비 못한 상황에 대한 민망함이 동시에 든다. 

→ 원하는 얼굴 표정 :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지만 미안한 마음도 살짝 섞여 있는 얼굴


Case 2. 회사 동료(또는 리더)가 퇴근 직전 어떤 업무를 부탁했다. 내용을 살펴보니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니라서 10분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당신은 해주겠다고 말한다. 

→ 원하는 얼굴 표정 : 기분이 상한 건 아니기 때문에 덤덤하고 협조적인 얼굴


뛰어난 배우가 아닌 바에야 어렵지 않을까요? 


우리는 꽤 오랫동안 믿어오던 믿음이 있어요. 표정을 보면 상대방의 숨은 마음을 알아챌 수 있다고 확신해요. 얼굴은 거짓말을 못한다는 논리이죠.  그런데 만약 우리가 일주일 동안 짓는 모든 표정을 모두 촬영해서 캡처하고 난 후 한 달 후 '지금 어떤 기분인 것 같나요?'라는 문제를 내면 아마 오답이 난무할 걸요. 


예를 들어, 지금 저의 표정은 어떤지 살펴볼까요. 고개를 약간 숙이고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무표정에 입술은 조금 앙다물고 있습니다. 아마 이 표정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저를 포함해서)은 이렇게 말할 거예요.


"음.. 약간 불만인 표정인 것 같아요."
"뭘 집중해서 보고 있는 거 같기는 한데... 심각한 일인가? 어쨌든 좋아 보이는 기분은 전혀 아니네요. 그건 확실히 알겠어요."


하지만 모두 틀렸어요. 모니터를 바라보며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고, 굳이 기분을 따지자면 좋은 쪽입니다. (오랜만에 글쓰기를 시작했거든요). 그러니 표정을 보고 상대방의 기분을 지레짐작하는 게 이토록 나 위험합니다. 제 표정을 제 자신보다 더 많이 본 남편도 자주 틀립니다.


"오늘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이네!"

"...... 그래? 기분이 너무 안 좋아서 일부로 마인드 컨트롤 중인데."


저 역시 남편의 얼굴 표정 알아맞히기를 자주 실패합니다.


"왜 눈을 그렇게 게슴츠레하게 뜨고 나 물 먹는 걸 쳐다봐?"

"나도 물을 달라는 의미잖아."

"...... 그래?"


언제부터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남을 바라보는 게 자기도 물을 달라는 의미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남편은 그렇게 힘주어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얼굴 표정을 보고 지레짐작하는 일이 이래서 무척이나 위험합니다


눈치와 기색을 가지고 서로의 마음을 지레짐작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아시겠지요. 화난 표정, 피곤한 표정, 섭섭한 표정, 걱정하는 표정, 졸린 표정, 짜증 난 표정, 집중하는 표정, 딴생각하는 표정 등은 모두 비슷합니다. 


마찬가지로 기쁜 표정, 고마운 표정, 열받아서 실소가 나오는 표정, 격려하는 표정, 즐거운 표정, 해탈한 표정 등도 모두 비슷해요. 이걸 미묘하게 구분해서 얼굴 근육과 눈빛에 담아내는 사람은 드뭅니다. 더 우리의 어려움을 높이는 건 '무표정'은 어느 카테고리라도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여자는 기분이 나쁜 걸까, 중요한 주제가 나와서 집중하는 걸까? (사진 : 픽사베이)


다른 사람의 얼굴 표정을 보고 지레짐작하는 일이 이래서 무척이나 위험합니다. Case 1에서 선물을 준 친구는 당신의 표정을 보고 '선물이 마음이 안 들어서 저렇게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나?'라고 지레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Case 2의 동료는 당신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 '간단한 거 하나 해주면서 되게 기쁜 나쁜 티 내네.'라고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당사자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죠. 


눈치가 빠른 편이거나 다른 사람의 기분을 잘 살피는 사람들은 회사에서나 지인과의 관계에서 남의 얼굴 표정을 유심히 살핍니다. 그리고 자신이 잘 파악했다고 확신해요.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게 전혀 '검증되지 않은 예측값'
이라는 겁니다. 


리더에게 보고할 때 얼굴이 어두우면 결과물이 엉망이라고 지레짐작해요. 그래서 마음이 의기소침해지거나 리더가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어서 괜히 화가 치밉니다. 하지만 리더가 '결과물이 엉망'이라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으면 그 표정 맞추기는 틀렸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저 졸리거나 배고플 뿐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오히려 결과물이 마음에 들어서 상사에게 언제 보고하면 효과적일까 생각하는 중이라 고민하는 표정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구내식당 메뉴가 부대찌개던데 11시부터 먹으러 가도 될까_feat. 보고받는 리더의 진짜 속마음 (사진 : 픽사베이)




숨겨진 의도가 아니라 말에 기준을 둬야 하는 이유


저는 팀장이 되고 나서 부서원들에게 한 말이 있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생글생글 웃는 쪽이라 무표정이면 확 티가 나는 쪽입니다. 그래서 말했어요. 혹시라도 내가 무표정이고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본인 때문인가?'라고 생각하지 말라고요. 만약 그렇다면 반드시 말해줄 테니 그전에 괜히 눈치 보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제 표정이 유난히 어두운 경우의 90%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오류가 나서 자꾸 재부팅을 하고 있거나, 제가 유난히 싫어하는 업무인 경비처리 업무를 엑셀에 정리하는 중일 테니까요. 


리더라면 본인의 표정에 직원들이 많은 해석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표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예 초반에 팀원에게 말해주는 것도 좋아요. 내 표정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내가 한 말을 기준으로 삼으라고. 표정으로 미리 짐작하지 말고, 헷갈릴 때는 항상 물어보라고. 


그리고 표정을 자꾸 해석하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충고는 적중률이 현저히 낮으니 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말로는 "이번 디자인 좋습니다."라고 하고 얼굴 표정은 시큰둥해 보이면 두 시그널 중에 하나는 거짓이겠죠. 

말과 표정, 두 시그널이
상반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말'을 믿으세요.

그게 정신건강에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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