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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Nov 17. 2023

꿈꾸는 사람, 사랑

다만, 과거는 꿈에 지나지 않는다.

  

  사춘기 무렵만 해도 서로의 꿈을 자주 물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내 꿈을 묻는 사람이 없다. 직업을 갖고 밥벌이를 하면서 그 물음은 현저히 줄었다. 마치 치열한 사회생활이 꿈으로 대체된 듯했다. 연차가 쌓이면서 승진을 목표로 삼았고 능력치가 오르면서 월급이 오를수록 꿈은 뒷전이었다.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도 앞가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떴고, 그 자체로 벌써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에 꿈을 잊었다.



  내 꿈은 글 쓰는 사람이었다. 단 한 줄이라도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글을 쓰고 싶었다. 부지런히 삶을 살아내고 꾸준히 기록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었다. 평생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탄생 당시 겪었던 난항과 선천적으로 타고난 장애로 지나온 역경을 이야기 수 있는 용기를 낸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며 그 시간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고심했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단번에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칠삭둥이 미숙아’였다. 그로 인해 뇌성바미를 앓게 된 절름발이 인생이니 저 말 한 마디면 내 지질한 과거를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프게도 편리한 그 말을 내 글에 사용했다. 처음에는 아픈 현실을 자각하는 화살로 때로는 장애를 핑계로 놀려대던 이들을 향한 분노로, 어느 날은 고난을 이겨낸 훈장처럼 쓰이다가 점점 무뎌져 갔다.



  저 표현을 무엇 때문에 쓰기 시작했는지 잊어버린 채, 어느새 적당히 둘러대는 정체성이 되어 있었다. 물론 내가 칠삭둥이 미숙아에 날 때부터 뇌성마비를 앓았고 일평생 절름발이 인생을 살아온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정체성은 아니었다. 타고난 몸의 모양을 나타내는 말로 나를 대신하기에, 그 말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 말에는 자기 목숨을 걸고 나를 살린 엄마의 용기도, 휠체어 없이 움직이지도 못하다가 기어코 일어나 걸었던 기적도, 모든 아픔을 이겨내고 즐거이 노래하는 나도 없었다. 사랑하고 기뻐하는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이 그저 애달프기만 했다.   



  말로는 지난 과거라고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타고난 몸의 모양에 갇혀 기록하는 동안 그 말은 어느덧 나를 구속하는 족쇄가 되어 있었다. 스스로 교도관을 자처하고 있었는 줄도 모르고 이미 끝난 과거의 고통을 되새김질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난 뒤에 본 내 글은 타고난 몸의 장애를 부르는 날개가 꺾인 새의 울음 같았다. 가두는 사람도 없는데 날갯짓 한 번 하지 않고 갇힌 삶의 불행을 말하는 처연한 슬픔으로 읽혔다.    



  분명 내 꿈은 글 쓰는 사람이었다. 다함없는 날갯짓으로 날아올라,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리는 글을 쓰겠다 해놓고, 새장 속에서 이미 끝난 과거를 들여다보며 눈물을 짜내고 있었다. 단지 꾸준히 글 쓰는 행위만 지속해 왔을 뿐. 시선이 과거에 머물러 반쪽 짜리 행복을 말했고 그래도 꽤 살만하다는 거짓 위안으로 눈앞의 행복을 바로 보지 않고 대충 뭉갰다. 꿈을 위한 행위만 반복했고 진심으로 꿈꾸는 나는 그곳에 없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꿈꾸는 사람만 있고 그 안에 사랑이 없었다. 글 속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멋들어진 존재로 표현했지만 내 생애 진정으로 나를 사랑한 순간은 몇 없었다.  



  실상 내 꿈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나는 오래도록 타고난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 삶의 원동력은 결핍이었고 그 기저에는 복수심이 있었다. 아픈 몸을 싸늘한 눈길로 흘기고 매서운 말을 서슴없이 내뱉던 사람들 보란 듯이 잘 살고 싶었다. 노여운 감정을 연료 삼아온 삶이니 자음과 모음을 합해 근사한 행복을 말해도, 마음은 화로 가득 찰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줄곧 넘치는 사랑으로 보살펴 준 부모님과 언제나 한결같은 남편,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별 용건 없이 연락해도 어제 만난 것처럼 반기는 친구들이 있어도 문득 꿈을 잊은 듯 목적 없이 외로웠던 이유는 나를 사랑하지 못해서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에야 다시 꿈꾼다. 마냥 글 쓰는 사람이 아니라 정녕 꿈꾸는 사랑이 되겠다고.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랑으로 태어났으니 이제는 사랑을 연료로 꿈꾸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이다. 이미 끝난 과거에 초점을 둔 나의 그릇된 시선이 스스로를 증오하고 괴롭게 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에 감사하며, 내 오랜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겠다는 마음가짐을 단단히 했다. 어쩌면 앞으로도 몇 번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당장 눈에 띄게 변하는 것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본질을 깨달았으니 이제라도 그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음을 기뻐하며 이전과 다르게 바라보는 힘을 기르겠다고 다짐하며 나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대는 사랑이니
오직 사랑만을 주라고.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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