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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섬 Jul 18. 2023

혹시, 의심하고 있나요?

메기 (감독 이옥섭, 2019)


“사람들은 왜 서로를 의심할까요?”

메기가 묻는다. 아, 여기서 메기는 주인공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어종(魚種) 그 자체다. 메기는 지진을 감지할 줄 안다. 사람들은 지진 전조현상을 함께 겪고도 대피할지 말지 고민하는 반면, 메기는 사실 하나만을 직관적으로 알아채고 물 밖으로 뛰어오를 뿐이다.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가혹하게 흔들리는 주인공 ‘윤영’의 옆에는 이런 메기가 있다. 메기는 윤영이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단 하나의 존재로서 말 없는 위로를 건네고, 관객들에게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내레이터로서 속마음을 건넨다. 이런 전지적 메기 시점의 전개는 등장인물들이 겪는 믿음과 오해와 의심의 삼각지대로부터 관객들을 보호하고,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현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거리감을 제공하는 장치가 된다.


“우리의 두려움은 상상력으로 이어진다.”

어느 날, 윤영이 간호사로 일하는 병원의 앞마당에는 한 커플의 애정행각이 담긴 엑스레이 사진이 걸린다. 찍은 사람보단 찍힌 사람의 정체에 더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 속에서 윤영은 자신과 남자친구 ‘성원’이 사진의 주인공이리라 확신한다. 영화 <메기>는 재치 있는 상황과 유머러스한 미장센으로 출발하지만, 그 원천은 불법 촬영이라는 사회적 범죄와 이로 말미암은 여성의 보편적 불안감으로부터 발원한다. 내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항상 의심해야 하는 삶에는 그 이면의 두려움이 늘 동반된다. 두려움은 상상을 만들고 상상은 더 큰 두려움을 불러오는 법. 불법 촬영에서 기인한 두려움의 파동은 러닝타임을 따라 공명하며 일상의 사실, 사건,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이 이야기는 ‘믿음’과 ‘의심’이라는 인간의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심리에 방점을 찍는다.



“우리의 삶은 오해를 견디는 일이다.”

“개를 고양이라고 우겨도 믿을 사람들은 믿고 떠들 사람은 떠드는” 세상이라고 부원장 ‘경진’은 말한다. 살다 보면 진실인 줄 알았지만 오해였던 순간도, 거짓인 줄 알았지만 사실이었던 순간도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이옥섭 감독은 이런 관점을 메기의 목소리로 전하며 ‘사실은 온전하게 존재할 수 없다’는 보편적이고도 철학적인 문장으로 영화를 수렴한다. 어쩌면 불법 촬영에서 시작해 의심의 보편성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이 쉽지 않겠다고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단편처럼 나눠진 11개의 챕터를 물 흐르듯 따라가다 보면 윤영, 경진, 성원은 어느새 내가 되어 있을 것이다.


“믿음을 검으로, 의심을 방패로”

사실과 연관된 사람들에 의해 편집된 사실들은 하루에도 수십 개씩 우리의 눈과 귀를 스친다. 믿음과 의심 중에 하나만을 택할 수는 없다면 그럼에도 우리의 저울은 믿음에 한 톨이라도 더 무게를 실어주어야 한다. 마치 지진파의 마루와 골을 끊임없이 오가는 윤영이지만 경진에게만큼은 “믿으셔야 한다”고 당부했듯이 말이다. 윤영은 그렇게 ‘믿음을 검으로, 의심을 방패로’ 삼으며 한 발 한 발 생을 전진 시킨다. 윤영의 마음이 고군분투하는 것과 달리, 영화의 모든 구간은 시종일관 밝으며 재치와 유머를 놓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작품의 메시지를 아무런 저항감 없이 귀속으로 스며들게 만들기 충분하다. 믿음이든 의심이든 구덩이에 빠졌다고 느끼고 있다면 구덩이를 더 파지 말고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라고, 그것도 메기의 목소리로 말이다.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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