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 영 Sep 05. 2021

딸 용돈 2만원

집을 나서는데 딸이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붙잡았다. 

딸은 2만원만 달라고 했다. 


아빠가 가진 현금이 없다고 말하자, 

딸은 울상이 되며, 알았다고 퉁명스럽게 이야기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방으로 쫓아 들어가, 왜 2만원이 필요하냐고 물으며

딸이 덮고 있는 이불을 조심스럽게 제쳤다.


친한 친구들 만나서 놀려고 하는데, 

밥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다이어리 꾸밀 각종 스티커도 사기 위해 

다이소에도 가야 하니, 그 정도의 돈은 필요하다고 말했고, 

친한 친구도 항상 그 정도의 돈을 들고 온다고 말할 때는 

딸에 눈에 눈물이 금세 고였다. 


엄마에게 달라고 해보라고 말한 뒤, 서둘러 도망치듯 집을 나섰다. 

이번 달도 적자다. 

매월 들어갈 돈은 정해져 있는데, 과외 구하는 게 그리 맘처럼 쉽지가 않다.

코로나19 때문인지, 아님 내가 실력이 없어서인지, 

도통 과외 문의가 들어오질 않고, 

있는 학생들마저 나가는 판이다. 


다들 힘들게 사는 듯싶어, 내 잘못이 아니겠거니 

위로해 봐도 당장 먹고 살 걱정 때문에 그리 쉽게 걱정은 떠나 주질 않는다.


잠시 후, 카톡 알람이 울려왔다. 아내였다. 


"자꾸 딸이 돈 달라고 투정해. 없다고 말했는데도 짜증내서, 

엄마가 가난해서 미안하다고 다른 엄마 찾으려면 찾아보라고 말해버렸어."


아내에게 답장을 보내지 않고 바로 딸에게 카톡을 했다. 


"엄마한테 돈 달라고 했다가 야단맞았구나."


딸의 카톡에는 원망과 억울함이 스며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저번에 할아버지가 용돈 하라고 보낸 10만원 중에서 

그냥 2만원만 나한테 달라고 한 거뿐인데. 엄마는 무조건 돈 없다고 

짜증만 내."


10살의 어린 딸이 충분히 느낄만한 감정이다. 

딸은 그 돈이 사실 자신을 위한 돈이 아니라 우리 가정을 위해 이미 쓰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나이다.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결국 다시 핸드폰을 붙잡고, 

아내에게 카톡을 남겼다. 


"내가 잘 이야기해 볼게. 맘 풀어."


미안했다. 능력 없는 내가, 남편이, 아빠가 돈을 조금밖에 못 벌어다 줘서 미안했다. 


매달 초에 입금해 주시던 한 학생의 학부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머님, 이번 달 입금이 아직 되지 않아서 연락드립니다."


초조한 마음으로 답장을 기다렸다. 

10분이 지나서야 답이 왔다. 


"죄송해요. 깜빡 잊고 있었어요. 지금 바로 입금하겠습니다. 선생님."


바로 딸에게 카톡을 보냈다. 

자랑스럽고 아빠다운 손가락은 평소와는 다른 에너지로 제멋대로 움직여, 

여러 번 오타를 수정해야 했다.


"딸, 언제 나가? 나가기 전에 아빠가 가서 2만원 줄게. 

걱정 말고 나갈 준비하고 있어."


집 앞에서 만나 딸에게 돈을 건네주고, 바로 발길을 돌렸다. 

남은 돈은 아내에게 보냈다. 

카톡도 남겼다. 


"미안해. 다 잘될 거야. 책도 쓰고 읽고, 과외도 더 늘어날 거야."


아내는 아무 답이 없었다. 


돈이 있다가도 없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는데, 

그래도 돈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려고 노력도 안 하는 건 아닌데, 

가끔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과거의 실패한 나의 그림자가 여전히 

지금의 나를 지배하고 있음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절대긍정은 희망적 이서 내일이랑 어울리는 말이다. 

그걸 알면서도 가끔은 절대긍정이라는 약효가 떨어지려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내일은 희망에서 불안으로 바뀐다. 

적어도 지금의 아내는 약발이 떨어진 것 같다. 

그래서 딸에게 결국 짜증을 내고 말았다. 

그 짜증은 결국 나에게 오는 듯해서 마음이 좋지 않다. 


미안하다고 말할 수밖에...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평소에 들어갈 시간보다 훨씬 더 늦게 말이다. 


먼저 딸 방문을 열었다. 

딸은 잠들지 않고 나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아빠, 아까 고마웠어. 아껴서 잘 쓸게."


오늘 친구랑 재미있었냐는 질문에 딸은 돈가스를 먹었고, 

베스킨에서 아이스크림도 먹었으며, 다이소에서 사고 싶었던

테이프와 스티커를 사 왔다고 했다. 

책상 위에 다이소 봉지를 보자 미소가 지어졌다. 

딸이 2만원의 행복을 원 없이 누린 듯해서가 하나의 이유였고, 

무엇보다 딸의 얼굴에 슬픔이 없어서였다. 


안방 문은 평소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잠이야 늘 그렇듯 소파에서 자면 되지만, 

옷을 갈아입으려면 안방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오늘은 그냥 자야겠다는 심정으로 들어가지 않기로 다짐했다.

입었던 옷에 냄새가 심하면, 

그냥 벗고 자면 될 거라는 생각을 하니 

오히려 맘이 편해졌다.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 쪽으로 다가갔다. 

식탁 위에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치킨 박스가 놓여 있었다. 


BBQ. 꽤 괜찮은 치킨이다. 

조심스럽게, 소리 안 나게 박스를 열었다. 

닭다리 하나와 함께 꽤 많은 양이 남아 있었다. 

나 먹으라고 남겨둔 모양이다. 

아마 엄마와 딸은 다정히 앉아 오랜만에 치킨을 뜯으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복기하며 서로에게 용서를 주고받으며, 

그렇게 맛나게 치킨을 먹었을 것이다. 

다행이었다. 치킨은 이래서 치느님이다. 


남은 치킨을 다 먹은 다음, 힘차게 안방 문을 열어야겠다 생각했다. 

남겨둔 치킨은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이고, 

남편을 신경 쓰는 마음이고, 나를 그것을 읽었으니 말이다. 

 

닭다리 하나를 잡고, 우걱우걱 씹었다. 

쓰는 김에 콜라도 시키지, 그게 얼마나 한다고. 

냉장고 문을 열어도 콜라는 보이지 않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불안함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