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흐가 나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 <4>
사랑하는 딸에게
프리다 칼로는 고흐가 나에게 소개해 준 화가다. 고흐와 관련된 영화를 찾아보고 싶어 넷플릭스를 검색했는데, 안타깝게도 넷플릭스는 이 위대한 화가의 영화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넷플릭스를 비난하며 닫으려고 한 순간, 넷플릭스는 나에게 아직 한 발 남았다며, '고흐 관련 추천작'을 보여주었다. 거기에서 <프리다>라는 영화를 발견했고, 도대체 무엇이 관련되어서 추천하는지 따져 보고 싶어서, 그리고 왠지 모를 끌림에 재생 버튼을 클릭했다.
영화를 진득하게 본 건 오랜만이었다. 영화관도 아니고 집에서 보는 것인데도 화장실 한 번 가지 않고 다 봤다. 쇼츠에 길들여진 아빠에게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영화 <프리다>는 19세 이상 관람 영화여서 지금 당장 보라고 권할 순 없지만, 나중에 꼭 한 번 보길 바란다. 이 영화의 기술적 장치나 감독의 편집 기교도 훌륭하지만, 가장 좋았던 점은 관객에게 화가 프리다의 인생을 여과 없이 들여다보게 해 준다는 점이다. 프리다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본 느낌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도 계속 프리다의 인생이 떠올라 잠을 설칠 정도였다.
프리다의 인생은 고통에서 시작해 고통으로 끝났다 해도 무방하다. 어릴 적부터 소아마비 증상을 앓았고, 의대 다니던 1학년 때는 큰 교통사고를 당해 온몸의 거의 모든 뼈가 으스러 질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 다들 살 수 없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프리다는 기어이 깨어났다. 다들 다시는 걸을 수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프리다는 기어이 두 발로 다시 일어났다. 프리다는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유일한 그림 선생님은 온몸에서 시도 때도 없이 다가오는 고통이었다. 당대 최고의 벽화화가였던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고 이내 사랑에 빠진다. 디에고는 아이까지 있는 이혼남이었고, 스물네 살의 나이차이가 있었다. 프리다는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그림을 인정해 주고, 조언해 주는 디에고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디에고는 인정받는 화가였으나 좋은 남편은 되지 못했다. 디에고는 계속 불륜을 저질렀고, 프리다 또한 계속 상처를 받았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참아왔던 프리다에게 더 이상의 관용을 베풀 수 없는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프리다가 가장 아끼던 여동생, 크리스티나와 남편 디에고가 불륜을 저지른 것이었다. 프리다는 그 사건이 교통사고보다 훨씬 큰 고통과 충격이었다고 회고했다.
프리다의 고통이 멈추지 않았기에 그림도 멈추지 않았다. 그때마다 자신을 바라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프리다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피하지 않았다. 숱한 자화상과 자신의 모습이 등장하는 초현실주의적인 그림들 속의 공통점은 프리다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직설적으로 그림에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인간 프리다를 존경하고 사랑했고, 그녀의 작품 또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사랑하는 딸아. 고흐와 프리다, 이 위대한 두 화가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당당하게 받아들여 예술로 승화시켰다. 이들에게 고통이 없었다면 과연 위대한 작품을 남길 수 있었을까? 고통은 어쩌면 위대한 예술을 낳게 하는 영감의 원천일까? 그렇다면 모든 예술가는 고통을 필수적으로 달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생각은 잠시 미뤄두자. 솔직히 아빠도 현재로선 적확한 답을 잘 몰라서 너에게 뭐라 말해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더 공부를 해봐야겠다.
고통은 도대체 무엇일까? 아빠를 포함한 모든 인간들은 누구나 고통을 경험한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은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정신적이건, 육체적이건 인간은 작은 고통 하나에 현재의 삶이 허무하게 무너지곤 한다.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행복한 삶이 계속되는 사람은 장담하건대 없다. 과거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현재도, 미래에도 행복으로 삶이 시작되어 죽는 날까지 행복한 일로만 채워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인간의 삶은 안타깝게도 고통의 연속이다. 이 점을 똑바로 인지하며 살아가야 한다.
고통은 현상이다. 미리 예측된 (때론 터무니없이 어리석기만 한) 불안과 걱정이 고통의 원천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삶은 종잡을 수 없이 불행으로 채워질 것이다. 눈앞에 일어나는 어떠한 일이 나에게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현상이다.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숨거나 피하거나 움츠리지 말고 맘과 몸을 다잡고 일어난 현상을 똑바로 쳐다보며 마주해야 한다.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을지언정 결코 그 앞에 굴복해서는 안된다.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 니체는 '나를 죽일 수 없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고통은 일어나는 일, 즉 현상이며, 가능한 한 최선의 방법으로 대처하고 해결하면 이내 사라질 고통이 대부분이다. 내가 반백년 살아보니 정말 그렇더라.
딸아, 앞으로 힘든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불안해하며 고통 속에 스스로 빠지는 바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아빠도 노력하며 산다. 아빠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불안과 걱정으로 스스로 힘겨운 삶을 선택하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인 듯싶다. 적어도 불안과 걱정을 물리치려고 노력하는 삶, 긍정적인 마인드로 고통을 주는 요소들을 직시하며 해결하고 개선해 나가려는 삶이 (카뮈가 말한) 불안함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 멋지게 복수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프리다의 작품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아빠에게 감동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 중에 최고의 고통을 거의 두루 섭렵한 프리다가 그런 삶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고통에 맞서, 이내 승리했다는 점 때문이다.
Viva La Vida : 삶이여 만세!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유작에 쓰인 저 글귀는 고통으로 가득 찬 삶조차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인 프리다 칼로의 삶에 대한 긍정을 보여준다.
P.S.
이 편지는 영화 <프리다>, 그리고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보며 느낀 아빠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아빠의 말에 영향받지 말고, 꼭 직접 체험하고 스스로 느낀 점을 생각해 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잠깐 짬이 나서 프리다 칼로 전시회를 다녀왔다. 평택에서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볼 수 있다니, 비록 레플리카 전이긴 하지만 무척이나 반갑게 느껴졌다. 직접 보고 느끼니 더욱더 진한 감동이 몰려왔다.
유독 수박 그림이 참 많았다. 멕시코에 수박이 많이 나기에 저렇구나, 프리다가 수박을 참 좋아했었나 보네,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어떻게 아셨는지 해설사분이 옆에 다가오셔서 설명해 주셨다.
"프리다가 수박을 좋아했데요. 수박은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여리잖아요? 그것이 마치 프리다의 자신과 같다고 생각해서 프리다는 수박을 좋아했고, 수박 그림을 많이 그렸다는 썰이 있어요."
물론 해설사님의 설명이 100%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도 일리 있는 말이었고, 굳이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다가오셔서 친절하게 말씀을 건네주신 해설사님의 미소가 진실되게 보여 이 썰을 아빠는 굳게 믿기로 다짐했다. 전시회를 찾아가는 일이 이토록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아빠는 몸소 깨달았다. 우리 딸도 기회가 될 때, 늘 가까운 미술 전시회를 찾아가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분명 유의미한 영감을 얻을 것이라 아빠는 확신한다.
전시회가 끝나고 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책도 샀다. 천천히 아껴 읽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