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먹는 사람

문제는 계획!

by 기쁨과 감사

2016년에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대국에서 승리했습니다. 뉴스가 온통 알파고로 도배되었습니다. 온갖 매체에서 AI, 3D프린터, 5G, 자율주행차 같은 첨단 기술이 바꿀 미래를 알려주었습니다. 정말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이 변하는데 가만히 있으면 뒤쳐지는 셈이잖아요? 그래서 뭔가를 공부해 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첫번째는 공부할 ‘뭔가’를 정하기가 어려웠어요. 무엇을 배워야 4차 산업혁명에 어울리는 인재가 될 수 있을까요? 게임 제작이나 앱 코딩 같은 것을 시도해 봤는데 한달도 못되어 그만두었습니다. 너무 어려웠어요. 두번째는 제가 실천에 약하다는 겁니다. 저는 새해 목표를 달성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부끄럽지만 서른이 넘고 부터는 새해 목표를 세우지도 않았어요.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맞나봐요. 이것저것 하고나면 어느새 잠잘 시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계획된 공부는 하지도 못했는데 말이죠.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나만 정체된 것 같은 초조함이 생겼습니다.


어느날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팀원들이 전부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제가 밥 먹는 속도가 많이 느리거든요. 그 순간, 유레카!! 깨달음이 왔습니다.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목표와 계획이 잘못된 것이다! 라고요. 우리는 밥 먹는 속도 뿐 아니라 성격, 취향, 습관 모든 것이 다르잖아요? 그러니 공부하는 방법도,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도 다를 수 밖에요. 알파고를 대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내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마라톤은 옆사람의 속도가 아니라 나의 속도로 뛰어야 합니다. 나의 속도를 알아야 달성이 가능한 계획과 목표를 정할 수 있으니까요.

내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정리해 봤는데 제법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있더군요. 잠자기 7시간, 세면과 식사 3시간, 회사업무 8시간, 운동 1시간, 출퇴근 1시간. 남는 것은 4시간인데 야근을 하거나 축구시합, 회식 같은 일정이 생기는 것을 고려하면 여유시간은 2시간 정도 였습니다. 잠이나 운동을 줄이면 좀 더 늘어나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건강하고 재미있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현재 상황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보았습니다. 생각 끝에 알파고하고 관계는 없지만 항공기체기술사를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당시에 맡은 업무가 항공기품질관리였거든요. 퇴근하고도 업무하는 기분이 드는 것을 빼고는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업무와 관련이 있으니까 계속 공부하게 되더군요. 2018년에 본부부서로 팀을 옮겼는데 그 이후로는 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신입 때는 항공기를 공부하는 것이 그렇게 싫더니 슬슬 재미가 붙었습니다. 국어시간에 수학을 공부하면 잘 되는 느낌과 비슷한 것 같아요.

기술사 공부가 하기 싫어질 때는 소설을 썼습니다. 제 꿈이 소설가 거든요.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왕이면 나도 한번 써보자 싶었어요. 무작정 쓰다보니 한 장 이상 쓰기가 어려워서 작법 관련 책도 읽었습니다. 쓰기도 싫어지면 소설을 읽었습니다. 소설도 싫어지면 그냥 놀았어요.


몇차례 응시 끝에 2020년에 항공기체기술사에 합격했습니다. 암기식이 아니라 업무식으로 공부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요. 합격하고서 일주일 내내 합격자 명단을 들여다 봤습니다. 좋은 기분이 한달 동안 이어지더군요. 엄청난 성취감과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코딩도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소설은 2019년에 두편을 마무리했습니다. 등단에는 실패했지만 상관없습니다. 글은 쓸수록 솜씨가 붙는다고 해요. 꾸준히 써본 덕분에 이 책도 쓰게된 거지요.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목표를 세웁니다. 보다 나은 삶을 소망하면서요. 다이어트, 독서, 자격증 같은 것들이 주를 이룹니다. 그런데 시작하는 순간에는 의욕이 넘쳐서 무리한 목표를 정하기가 쉬워요. 나의 하루를 정리해보고 달성 가능한 목표를 정해야 합니다.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은 달성 시기를 조금 늦춰야겠죠. 그리고 재미있으면서 미래에 도움도 되는 일을 찾아야 해요. 그래야 꾸준히 할 수 있습니다.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나’가 아닌 ‘계획’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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