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은 조직 안에서 가장 부지런히 움직이는 영역 중 하나다.
캠페인은 분기마다 기획되고, 콘텐츠는 주 단위로 발행된다.
유입과 전환, 리드와 문의 같은 수치는 정기적으로 정리된다.
활동은 분명히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 달라졌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이번 분기에 무엇을 얻었는지를 묻는 질문 앞에서,
마케팅은 성과가 아니라 과정을 다시 설명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흔히 나오는 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직은 판단하기 이르다”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말이다.
마케팅은 끝났지만, 판단은 계속 유예된다.
중요한 점은 이 상태가 실패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캠페인이 망한 것도 아니고,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결정이 남지 않으면, 마케팅은 다음 단계로 이어질 수 없다.
그래서 조직은 다시 비슷한 활동을 반복하게 된다.
이 반복 속에서 마케팅은 점점 설명 중심의 일이 된다.
성과를 요약하는 대신 해석을 덧붙이고,
결과를 말하기보다 맥락을 길게 풀어낸다.
설명이 늘어날수록 다음 선택은 더 어려워진다.
이때부터 마케팅은 이상한 평가를 받기 시작한다.
열심히 한 것 같기는 한데, 남는 게 없다는 평가다.
성과가 없어서가 아니라, 아무 결정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케팅은 실행되었지만, 조직의 상태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장에서 다루려는 것은 “마케팅이 왜 실패했는가”가 아니다.
실패 이전에 이미 발생한 상태,
즉 마케팅 이후에 아무 결정도 남지 않는 상태다.
마케팅은 분명히 실행되었다.
그러나 그 실행 이후에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렇다면 마케팅이 끝난 뒤,
조직 안에서 처음으로 멈춰 선 지점은 어디였을까.
무엇이 결정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