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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퀵퀵슬로우 Oct 28. 2018

사연이 있는 소비

돈으로 시간을 사는법

‘쨍그랑’

지난주에는 7만원 짜리 접시에 금이갔고, 지난달에는 5만원짜리 와인잔이 깨졌고, 그 전에는 2만원짜리 밥공기가 깨졌다. 당연히 내 마음은 7만원 짜리 접시에 가장 아파야하겠지만, 실은 2만원짜리 깨어진 밥공기에 가장 아팠다. 사연이 있는 물건이었다.

물건을 살 때에는 그 물건의 가치를 돈으로 매기지만, 일단 사고나면 그 물건의 가치에 돈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히 줄어든다. 오히려 실용성, 물건에 얽힌 사연, 심미성 등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또한 내가 매긴 가치는 타인이 기꺼이 지불할 비용과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몇 만원씩 주고 산 옷들도 유행에 뒤쳐지거나 질린다는 이유로 선뜻 버려지는 시대. 하지만 아직 우리는 여행지에서 산 3천원짜리 자석이 떨어져 깨어졌을때 가슴이 아프다. 사연이 깃든 물건이기에. 돈으로도 살수없다는 시간이, 추억이되어 깃들어있는 물건이기에. 어떤 물건이든 거기에 추억과 사연이 새겨지면 그 물건은 지불한 돈보다 귀한 물건이 된다.


아끼지 않으면 항상 부족한 수입. 우리는 어떤 소비를 해야할까? 일회성, 소모성 소비는 무조건 하지 말아야하는 것일까? 무조건 참고 꼭 필요한 물건만, 없으면 안되는 물건만 사야하는 것일까? 이미 실용적 요구에 의해 소비하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던가.

하룻밤 술을 마시고 식사를 하는데 10만원을 쓴다고 가정해보자. 지난주에 먹었던 삼겹살이 갑자기 또 먹고싶어져 직장 동료와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는 것. 혹은, 여자친구와 헤어져 슬퍼하는 친구를 위해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것. 어떤 소비가 더 오래 기억될까?

이번에는 똑같이 만원이라는 돈으로 무언가를 산다고 가정해보자. 퇴근길에 길거리 가판에서 판매하는 만원짜리 귀걸이를 구입하는 것. 또는, 여행지에서 만난 길거리 밴드의 허술한 녹음 CD를 현지에서는 비교적 거금인 만원이라는 돈을 주고 구입하는 것. 어떤 만원이 더 가치있을까?


스무살에는 몰랐던 빈티지의 매력을 알게되는 요즘. 새 것으로 채워진 공간과는 다른, 소박하고 꾸준한 매력. 오래 사용한 물건이, 그 물건의 주인이 더 멋있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수많은 물건들 중에서 사연이 깃든 물건은 얼마나 될까? 아직 사연이 없는 물건이라면 살면서 사연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어떨까? 엄마의 낡은 10자 장롱처럼 나와 함께 늙어갈 물건이 무엇이 될지 설레는 마음이다.



Photo by Brooke Larkchuttersnap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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