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20_적절한관심을 요하는 관계
저는 요즘 자비명상(CCT)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제 5주차이죠. 작년도 그랬지만 이렇게 집중수련을 하는 기간에는 평소보다 내적갈등이 심해집니다. 명상을 하는데 마음이 더 산란하다는게 이상하실까요? 명상을 하면 내 몸과 마음의 현 상태를 바라보는 것이 기본이 되곤 합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그간 덮어두었던 생각과 감정을 대면하게 되죠. 평소엔 일상의 속도가 빠르게 흘러가다보니 미처 마무리되지 못하고 다독여 놓았던 마음의 찌꺼기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시죠? 저희 부부 자주 싸우죠;; ㅎㅎ 그러면서 다듬어질 때도 있지만 .. 결혼 8년차 .. 싸우다 쌓인 앙금더미를 한 차례 덜어낼 때가 되었죠. (인생 선배님들, 제 말 맞지요? ㅎㅎ 아닌가..;;) 요즘 너어무 밉더라구요. 솔직히 밉다못해 쳐다보기도 싫더라구요. 나의 나다움을 왜 인정해주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넌 나랑 다른 사람이라고 남편을 제 마음의 경계 밖으로 밀쳐도 내보았습니다. 그런데 같이 살면서 또 공동의 아이를 키우면서 타인처럼 대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발매트가 되지 마세요’ 라는 말 아시나요? 어리석은 자비로움을 뜻하는 말입니다. 상대에게 자비를 베푼다고 해서 상대에게 마치 발매트처럼 ‘그저 밟고 지나갈 뿐인’ 존재가 되지 말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누군가와의 관계가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그 불편함을 못견뎌 져주거나 사과할 때가 많아요. (근데 또 옳지 못하다 여기며 누구보다 짚고 넘어가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상황을 꼬집고는 이후에 몰려오는 불편한 분위기를 무마시키기 위해 엎드려 사과할 때가 정말 많죠.) 남편에게도 그랬어요. 화내고 바로 사과하는 저를 그는 발매트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거봐 결국 내가 옳았어’ 라며 제가 마음을 내어주어도 늘 ‘더 많이’ 를 외치는 그가 힘겨웠어요. 요샌 정말 이혼이 고팠을만큼.
저에게 명상수업 듣는 시간 또는 캘리그라피 하는 시간 있으면, 집안일과 아이한테나 좀 더 신경쓰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부동산 공부나 좀 하라고 할 때마다 그 부당함에 화가 났어요. 내 할 일(=집안일, 육아) 다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내가 나다워 지는 일)하는데 왜 그걸 못하게 하는지 이해가 안되었죠. 그런 이유로 싸우고 나면 남편과의 관계가 서먹해지는데 그 데면데면한 기간을 못견디는 저는 종종 이런 카톡을 보냈어요. “ㅇㅇ부분은 내가 미안, ㅇㅇ부분은 너가 사과해” 그리고 이후 남편이 요구한 집안일, 육아, 부동산에 좀 더 시간을 투자하구요. 이게 항상 반복되었습니다.
그렇게 8년이 지나니 저의 집안일, 육아 기술은 업그레이드 되는 반면 남편의 집안일, 육아에 대한 기여도는 거의 전무하게 되더라구요. 그럼에도 여전히 그는 빵점 주부, 빵점 엄마를 외치며 제 공부(명상, 캘리)를 깎아내리곤 합니다. “네 글씨가 싫다.” “명상을 하는데 넌 왜 화를 못참는건지 모르겠다.” 라고 합니다. 이번 프로그램을 시작하니 그의 반발은 더욱 심해졌죠. 가슴이 갑갑했습니다. 한편으론 너무 억압을 받으니 오기도 생겼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또 싸웠어요. (이렇게 공개하기가 부끄럽습니다만) 그리고 이번에는 한 달이 지나도록 사과하지 않았어요. 반복되는 패턴에서 벗어나고 싶었죠.
그러는동안 하나밖에 없는 남의 편이 정말 남의 편이라는 사실에 억장이 무너지기도 했고, 그와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달리 방법이 없는 것 같아 슬픔이 몰려오기도 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렀습니다. 며칠 전 쌀을 씻는데 그리 슬프더라구요. 그 때 자비명상 선생님의 말씀이 들렸어요. 선생님 말씀음원을 듣고 있었거든요. “지난한 때일 수록 자신의 곁에 머물러주는 친구가 되어주세요. 스스로에게” 그 말에 이런 생각을 해보았어요. 이렇게나 슬픈 지금 내가 함께 있길 원하는 친구의 모습은 무엇일까?
그냥 옆에서 바라봐주면 주는 친구.
날아올라가 쌀을 씻는구나.. 눈빛으로 알아주고
날아올라가 앞으로 밥을 앉히겠구나.. 눈빛으로 알아주고
아무 평가나 비판없이 그리고 조언없이,
그냥 바라봐주고 믿어주는,
그냥 가만히 옆에 머물러주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잠시 스스로를 제 3자처럼 관찰했습니다. 자연스레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그렇게 며칠,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스스로를 하나 하나 관찰해보았습니다. 그런 행위에 감정이 조금 누그러지는 효과가 있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책상에 앉아있다 문득 남편에 대해 제 3자처럼 관찰하기를 시도해보게 되었어요. 그러자 남편도 그럴 수 있었겠다. 나에게 요구한다는 것은 뭔가 해결되지 않은 욕구가 있다는 것이고, 결국 그도 관심을 바랐던 게 아닐까.. 그도 나와 똑같이 관심을 원했던 걸까? 비록 내 입장에선 바람직하지 않아보이는 바람에 대한 것일지라도. 내가 자신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자신이 하는대로 믿고 따라와주길 바랐던게 아닐까?’
그가 나에게 바라는 요구사항 자체가 이해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한 인간으로써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동안 무시했던 그의 노력들도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방식의 노력이 아니라서 노력이라 취급하지 않았던 행동들이 떠올랐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상충하는 것은 우리 둘이 피터지게 투쟁한다고 해결 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시간이 지나야할 것 같습니다. 그 시간을 함께함으로써(어쩌면 그저 서로를 견뎌냄으로써)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당장 불편한 문제를 해결해버리고 싶었던 성급함이 저로 하여금 소리지르게 만들고 울게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 싶었어요.
물이 끓기 위해서는 열기를 가하는 시간이 지나야하듯 남편과 더 나은 관계를 위해서 그와 함께 하는 충분한 세월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기간동안 서로에게 발매트같은 존재(내조를 위한 아내, 수입을 위한 남편과 같이 용도/역할로써의 존재) 에만 머무르지 않기 위해 서로에 대한 ‘따뜻한 마음’ 을 유지하는 힘을 길러야 할 것 같습니다. 역시 서로에 대한 ‘사랑’만이 답인걸까요? ^^ 인간관계에 대해 제가 내리는 결론은 늘 ‘사랑’인 것 같습니다.
ps. 고아새 명상가이드,
이번 주는 불안시리즈 마지막 영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