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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오 Aug 07. 2021

이토록 아름다운 혐오를 위하여

01 독재자 면접

 자네의 자기소개서는 잘 받았네. 한글파일이라 내 맥북에서 보는데 조금 애를 먹었지만, 양식상의 문제는 전혀 없더군. 아마 지금쯤이면 우리 회사 번호로 아주 상투적인 탈락 문자가 도착했겠지. 나도 그 결과에 동의하네.  자네는 우리가 찾던 인재가 아니야. 다만, 지금 내가 이렇게 이례적이고 개인적인 연락을 하는 것은 자네에게 어떤 것을 보았기 때문이네. 이 메일을 다 읽고 나서 동의하거든 내게 답장을 보내주길 바라네.


 자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할까. 그래, 자네의 글부터 조금 지적해보도록 하지. 아주 거슬리는 단어들이 몇 가지 있더군. 특히 첫 부분이 잘못되었어. 그 단어를 본 우리 면접 담당관들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지. 자네는 스스로를 '독재자'가 되기 위해 살아왔다고 말했네. 뭐, 그다음 문장은 역사를 공부했다던지, 많은 모임을 이끌어 봤다던지 하며 썼던가?  뒷부분은 인상적이지 않더군. 무튼, 그 '독재자'라는 단어, 좀 오래됐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 그 단어는 20세기의 잔해물이란 말이지. 21세기 하고도 20년이 지나버린 지금은 누구도 그 단어를 쓰지 않는다네. 앞으로는 스스로를 '운동가'라고 말하길 바라네. 좀 더 순수해 보이니 말이야.


  순수라는 단어를 꺼내니 자네에게 할 말이 더욱 떠오르는 군. 우리는 시대에 맞게 살아남기 위해 좀 더 많은 단어와 직업을 변모시켰지. 앞서 말한 '운동가'가 그 대표적인 예시라네. 자네도 혹시 느꼈나? 민주주의와 자유를 대표하던 '운동가'가 이젠 그 반대의 의미를 대표하게 되었다는 걸? 그게 다 우리의 작품이지. 수많은 노력을 했었다네. 90년대 이후의 파업과 단체에 대부분 가담했지. 우리의 직업이란 알다시피 위기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거든. 소련의 사회주의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을 깨닫자마자 우린 사회주의를 버렸네. 우리의 목적은 '독재'이지 그깟 사회주의가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그동안 배척했던 '자유'와 '순수'를 받아들였네. 그러한 연유로 자네가 받은 자기소개서 문항에 '자유'와 '순수'를 물었지.

  

 자네가 설명한 자유와 순수는 매우 흥미롭더군. 다른 지원자의 설명은 읽는 중간에 하품이 나와 텀블러에 다시 물을 뜨러 갈 정도로 심심하고 길었네. 때론 너무 철학적이고, 때론 너무 개인적이었지. 하지만 자네의 설명은 완벽했네. 그것이 내가 친히 답장을 보내는 연유이기도 하고 말이야.


 "나는 자유와 순수를 사랑한다. 다만, 남들이 아닌 내 것을."


 이만큼 우리 면접에 부합하는 설명이 있을까. 옆의 면접관들이 너무 짧다며 자네의 이력서에 탈락 도장을 찍는 것을 막을 수 없었지만, 나는 분명 가능성을 보았네. 자네의 설명에서 아주 진실되고 성실한 운동가의 모습이 보였어. 거짓은 사람을 현혹시키지만, 진심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법이지. 나는 그래서 자네를 우리 기관이 아닌, 특별한 단체로 보내려고 하네. 자네가 이 시대에 맞는 단어와 행동을 배우기에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어떤 단체인지는 문서상으로 설명할 수 없네. 아까도 말했듯 우리는 위기에 민감하니까. 혹시 오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언제든 연락을 하게나. 이 메일을 받기 전까지 탈락 문자를 보며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우리 기관을 욕했어도 상관없다네. 면접이라는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나. 무튼, 연락을 기다리겠네. 아, 참고로 자네는 답장의 초두에 이 말을 꼭 적어야 하네. 보안상의 이유지.


 "오늘은 운동을 해야 할 날이네요."


 그럼 좋은 밤 되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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