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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오 Aug 14. 2021

미운 건 오리

<미운 아기오리> 다시 쓰기

 몇 달 전부터 왼쪽 팔꿈치가 불편하다. 다행히 호수를 돌아다니거나, 인간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을 때 고통을 유발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심지어 어느 짓궂은 어린아이가 호수를 향해 던지는 돌을 피할 때도 별 무리가 생기지 않았다.

 

 문제는 날개를 펼치는 순간에 발생했다. 적당한 거리의 수초를 향해 날던 날과 여름의 열기를 털어내기 위해 날갯짓을 하던 날,  왼쪽 날개의 이음새를 누군가 억지로 당기는 느낌이 들어 견딜 수 없었다.


 "그러다 날지 못하게 되는 거 아니야?"


 옆에 있던 오리, 지오가 말한다. 그는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마다 상대방이 싫어할만한 예측을 내놓는 취미가 있다. 우리는 꽤 여러 번 그에게 주의를 주었지만, 누군가가 기대만큼 행동을 바꾸는 것은 호수에 무지개가 매일 뜨는 것보다 어렵다. 결국 우리는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최대한 아꼈다.

 

 나 역시 이야기를 아껴야 한다 주장한 오리 중 하나였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자신의 상태를 남이 먼저 얘기해주길 바라는 욕망이 있다.  아마 호수의 밑바닥보다 깊은 곳에 있겠지. 여하튼, 그 욕망은 지오가 가장 잘 잡는 먹잇감이었다. 그는 호수 수면에 바람이 닿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내 옆으로 와서 날개가 불편한 것이냐 물었다. 나는 그의 노란 부리 속에 잡혀 목숨을 비는 벌레처럼 순순히 "최근 들어 심해졌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잔뜩 굶었다 죽은 시체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나의 최근 행적을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혹시 인간 아이에게 돌을 맞았는지, 다른 오리와 싸운 적이 있는지, 혹은 교제를 하는 암컷 오리와 문제가 생긴 건지 까지. 나는 그의 날카로운 질문들을 받아내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 지오는 쉽게 굴복하지 않는 먹잇감에게 흥미가 생긴 표정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분명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그렇겠지."

 "원인을 알아야 해결을 하지. 너 지금 꽤 심각한 상태야."

 "그걸 네가 어떻게 해결해? 너 날개를 제대로 쓴 적은 있어?"

 "무슨 말이야?"

 "나는 실제로 몇 달을 이 상태로 지냈지만, 누구도 내 상황에 대해 알 수 없었어. 오리는 호수에서 날아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런데도 네가 내 날개를 해결해준다고?"

 "음...."


 지오는 자신의 노란 부리를 굳게 닫았다. 생소한 모습이었다. 그는 생각보다 독한 먹잇감의 저항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잔뜩 흥분한 채 흰 깃털을 곤두세우며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무엇을 향해 화를 내는 건지 명확하지 않았다. 지오의 참견 때문이었을까, 내 날개에 대한 답답함이었을까. 하지만, 이미 대상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다음 말에 어떻게 반박해야 속이 풀릴까 하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너 아직도 백조가 되고 싶구나."


 그의 말은 내 의지를 상실시켰다. 나는 프리킥에서 예상치 못한 궤적으로 빨려 들어가는 축구공을 보는 골키퍼처럼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지오는 득점자답게 통쾌한 표정을 짓고 있을까? 도저히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개가 마주한 호수의 수면에 내 모습이 비쳤다. 너무도 평범한 오리, 겨우 평균적인 모습을 갖춘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증오한다.


 나의 어린 시절은 '화려함'이란 단어와 거리가 멀었다. 남들만큼 노랗지 못했던 회색 깃털이 문제였다. 회색 깃털은 나를 언제나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또래의 이성을 사로잡기 어렵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고, 남들 앞에 서서 내 의견을 주장하는 일 역시 피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나는 언제나 조용하고 겸손하지만 조금 못난 오리였다.

 

 그런 내게 유일한 희망은 호수에 전해지는 이야기였다. 아주 못생겨 미움만 받던 회색 오리가 새하얀 백조가 되었다는 이야기. 그 백조는 다른 오리들은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멀리 날아가며 화려한 날갯짓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달빛에 비치는 깃털들이 흰색으로 바뀌는 것을 볼 때마다 내게도 그런 순간이 올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내게도 화려한 순간은 온다. 지금까지의 고통과 슬픔을 보상받고도 남을 그날은 반드시 온다.”


 나는 그 순간만을 기다리며 노력했다. 아침에 핀 물안개 속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깃털을 다듬었으며, 일부러 날갯짓을 더 반복하며 호숫가에 수초와 벌레 따위를 섭취했다. 대부분의 오리들은 그런 내 노력을 보며 “이러다 백조가 탄생하겠는데?”라 말했다. 때론 반쯤 비아냥거리는 것에 가까웠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분명 백조일 테니까. 언젠가 멀리 날아갈 테니까.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어제도 오지 않았고, 오늘도 오지 않았다. 내가 시도했던 수많은 시도들은 내게 평범함을 주고 떠났다. 나의 어린 날에 대한 보상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나의 날갯짓은 내 팔꿈치를 아프게 만들 뿐이었다. 여기서 더 무리하면, 지오의 말처럼 더 이상 날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그럼 그때부터는 오리조차 되지 못하겠지. 나는 수면에 비친 평범한 오리가 너무도 미웠다.


 “너는 분명 오리야.” 지오의 날개가 내 등허리에 반복적으로 닿는다.

 “나도 알아.”

 “그래, 모두 백조가 되고 싶어 했지. 하지만, 우리는 결국 오리야. 너는 힘껏 울고, 슬퍼하고서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돼.”


 그의 말에 나는 있는 힘껏 소리친다. 지난날에 대한 억울함과 슬픔을 담아, 앞으로의 평범한 나날들에 대한 두려움을 담아. 목청이 나가도 좋았다. 너무 울어 주변의 주의를 받더라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울부짖었다.


 “할아버지, 저기 좀 봐요!” 한 어린아이가 호수를 보며 노파의 왼쪽 소매를 끌어당긴다.

 “그래, 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노래하고 있구나.”


오늘도 호수에는 오리들의 아름다운 울음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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