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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오 Jun 29. 2021

아파트별 1505호

토이 <딸에게 보내는 노래>

 비는 한 순간에 멎는다. 여름을 대비해 잘려나간 풀들은 시멘트 길을 덮었다. 축축한 초록색이 비를 맞아 선명해진 거리를 어지럽혔다. 두 발자국 정도 앞에 생긴 웅덩이는 소금쟁이도 없는데 거품이 피어난다. 나는 영어로 캉골이라 써진 검은색 에코백을 어깨에 걸치고 우산을 접는다. 조심히 접으려 했지만, 우산대 끝에 맺힌 물방울이 손등에 닿는다. 손을 가볍게 털고 하늘을 본다. 남색 우산 아래 감춰진 회색 하늘이 보인다. 밀려가는 옅은 먹구름, 나는 실망한다.


 “분명 오늘 하루 종일 온다 했었는데….”


 혼잣말과 함께 열어본 날씨 앱은 ‘대체로 흐림’이라는 문구가 써져있다. 나는 못내 아쉬워 시간대를 오른쪽으로 스크롤해보지만, 비 소식은 더 이상 없다. 누군가는 이런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방금 경비실 앞에 도착한 택배기사가 내 아쉬움을 듣는 다면 고개를 갸우뚱하고 가버릴지도 모른다. 깔끔해진 화단 위에서 아까부터 날 경계하는 고양이 역시 내게 ‘하악’하고 무서운 소리를 내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비는 중요하다.


  만약 내게 아이가 있다고 해보자. 옆에 애인도 없는 현재에 비해 당돌한 가정이긴 하지만, 뭐 상상은 자유니까. 이 정도 현실쯤은 상관없겠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서, 아이는 5살이 조금 넘었다. 나는 맞벌이를 하는 사람으로 아내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퇴근을 한다. 퇴근을 한 나는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아파트 현관을 서성인다. 15분 정도 지나자 ‘우산 어린이집’이라 적힌 노란 스타렉스가 도착한다. 아이는 “아빠~!”하고 두 팔을 벌린다. 분홍 체크무늬 앞치마를 입은 젊은 선생님이 조심히 아이를 차에서 내 품으로 보낸다. 나는 조심스레 선생님과 목인사를 나누고 자그마한 가방을 검지 손가락에 걸친 채 안으로 들어간다.


 “아빠, 직업이 뭐야?”


 아이는 내 가슴과 가까운 곳에서 질문한다. 나는 아이를 한 번 고쳐 안고 “직업? 아빠 직업?”하며 되묻는다. 아이는 “응!”하고 엘리베이터 안이 울리도록 말한다.

 

 “아빠는 회사원이지.”

 “회사원? 그럼 엄마는?”

 “엄마도 회사원이지~.”

 “왜 다 회사원이야?”

 “응?”

 “선생님이 오늘 직업은 정말 많다고 했단 말이야.”


 나는 “그랬구나.”하고 말하며 도어록을 누른다. 아이를 검은색 소파에 내려놓는다. 아이는 나와 아내의 직업이 같은 이름인 것에 실망한 표정이 가득하다. 아내는 공무원이고 나는 건설회사에 다니지만, 그런 설명은 5살에게 적합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엄마가 오기 전에 요구르트를 먹을지 묻는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나는  냉장고 밑에서 두 번째 칸에 아내가 건강을 위해 하루에 한 번만 줘야 한다 당부한 요구르트를 가져간다. 새하얀 빨대까지 초록색 뚜껑 위에 꽂고 “줄까?”하고 묻자, 아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한숨을 돌리고 거실 벽에 걸린 시계를 본다. 아직 오후 8시가 되기에 시간은 30분 정도 남아있다. 나는 요구르트를 다 먹어가는 아이에게 어떻게 대답을 해줘야 맞을지 고민한다. 직업, 수많은 직업. 옆 동의 엘리베이터 신축공사로 열려있는 옥상이 떠오른다. 나는 아이에게 옥상에 놀러 가자 말한다. 아이는 좋다고 말하며 소파 위를 방방 뛴다. 얘들은 높은 곳을 언제나 좋아한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아이는 자기가 누르겠다며 안아달라고 한다. 나는 “22을 누르면 돼.”하며 아이를 들어 올린다. 22가 적힌 버튼에 불이 들어온다. 숫자가 일곱 번 바뀌고 도착한 층에서 빨간색 안내 화살표를 따라 옥상에 도착한다. 우리는 아파트 옥상 난간 앞의 줄까지 걸어간다. 아이는 내 목에 올라타 하나둘 켜지는 도시의 야경을 보며 탄성을 지른다.


 "뭐가 보여?" 나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의 무게를 느끼며 묻는다.

 "아파트! 빛이 정말 많고 예뻐서 별님 같아!"

 "맞아. 우리는 다 아파트 별에 살고 있는 거야."

 "나도?"

 "그럼. 우리 모두가 별에 살고 있지. 각자의 별에서 각자의 직업을 가졌단다. 네가 나중에 무엇을 하고 싶을지 고민될 땐, 저 별들을 보면 되는 거야."


 우리는 오후 8시가 조금 되지 않은 밤에 미세먼지와 구름에 가려진 하늘의 별보다 많은 아파트 별을 본다. 좀 더 많은 시간이 지나 아이가 목마를 타지 않고도 나보다 커지는 날이 오면, 어떤 별에 앉아 있을까. 나는 오늘보다 탁해진 눈과 줄어든 몸집으로 아이의 별에 가야 하겠지. 그날에는 비가 필요하다. 아이의 별이 선명한 색을 낼 수 있도록. 내가 그 빛을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이 정도면 택배기사와 고양이도 충분히 이해했으리라. 이제 아직 젖어있는 우산을 묶고 내 자그마한 아파트별 1505호로 돌아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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