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1년 차, 중간고사에 싸워 지다
< 박사가 되고 싶은 일개미 >
두 번째 중간고사 시험을 치렀다. 박사 과정이 되니 시험 한 번을 치르는데 시험 범위가 너무 넓었다. 배운 것만 시험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관련된 책과 논문을 별도로 공부해야만 시험장에서 뭐라도 쓰고 나올 수 있었다. 영어지문을 주고 문제를 해결하라는 방식의 시험문제도 나오고는 한다. 이번 시험은 별도의 공부는 필요 없이 수업시간에 다룬 자료만 공부하면 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함정은 수업자료가 800페이지에 달한다는 것이다. 키워드 중심으로 강의자료가 구성되어 있어 내용을 이해하려면 별 수 없이 다른 자료를 찾아봐야 했다. 시간은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다른 자료를 찾아보는 것은 과감하게 포기했다. 평소에 강의를 빠뜨리지 않고 들었던 나의 성실함을 믿고 내가 필기하고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만 공부하기로 한 것이다. 선택과 집중은 박사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인 것 같다. 물론 교수님들은 싫어하겠지만 나처럼 회사와 학교를 병행하는 특수상황에 놓인 학생에게는 선택과 집중이야말로 꼭 필요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방대한 자료를 내 방식대로 요약해서 노트를 만들었다. 그 분량만 해도 20여 페이지에 달했지만 노트를 작성하면서 용어를 익숙하게 만들고, 노트를 3번 이상 읽으면서 암기해 나갔다.
시험 당일, 한 시간 반 동안 10문제를 푸는 시험이 출제되었다. 안타깝게도 처음 보는 용어들이 둘셋 있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작성은 할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였고 모두 쏟아내고 시험장을 나왔다.
열흘 전 치른 중간고사 과목은 벌써 성적이 나왔다. 과목마다 성적공시에 소요되는 기간이 다른데 이 과목의 경우 이해하지 못하면 아예 한 글자도 쓸 수 없다는 특징이 있어서, 채점에 어려움이 없었다는 후문이다. 충격이었던 것은 시험장에서 많이 썼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그리 좋지 못했다는 것이다. 성적을 받고 이 삼일은 밤잠을 설쳤을 정도로 낮은 성적에 충격이 컸다. 이 과목을 포기하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기말고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첫 학기 성적이 걱정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