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직장인이자 박사 1년 차 학생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N잡러인 상황에서 비록 한 곳에서 번 돈을 다른 곳에 쓰는 것에 불과하지만 나 역시 N개의 일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 가치이자 격언이 있다. "최선을 다 해라" "노력하면 반드시 성취할 것이다"와 같은 노력 강제 주입 가치이다. 나 역시 40년 가까운 인생 동안 이 말들을 믿고 실천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고 있다.
1. 과거 : 노력한 만큼,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만큼 시험점수가 나올 것이라는 어른들 말씀을 믿었다.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고 하루 최소 8시간에서 최대 14시간까지 학교와 독서실에서 공부했다. 그 결과는 역시 성적으로 증명되었고 과정과 결과가 너무도 명확했기에 그 말은 내게 진리와 같았다. 누군가 명문대에 입학한 내게 그 비결을 묻거든 항상 최선을 다하고 투입 시간을 늘리라고 조언했다.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투입한 시간과 노력에 비례해 성과를 내는 단순한 모델이 내 인생 30년을 지배했다.
처음 이 말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직장에 들어가서였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야근을 해서라도 주어진 일을 끝마치려고 노력했던 것 같은데 돌아오는 것은 번아웃이었다. 길을 잃은 내가 잠시 멈추고 쉬어가는 것을 택했을 때 그 이후의 직장 생활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회사는 이미 나를 '포기가 빠른 사람', '위험을 회피하는 사람'으로 낙인찍어 버렸다.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고 내게 직접 질문하지도 않았다. 실패할 때마다 내가 그런 선택을 했기 때문에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들만 되돌아왔다. 큰 상처였다.
2. 현재 : 직장에서 길을 잃은 내가 학업이라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이미 나는 40대에 가까운 나이였고 체력과 두뇌는 20년 전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매일 업무를 하고 때로 야근을 하며, 주말과 비는 시간에는 공부를 하는 이중생활은 버거웠다. 또한 그 결과도 썩 좋지 못했다. 당연했다. 하나에 올인하는 것보다 2개에 분산하는 것은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이 절반이 되는 것이니까. 이제 방향과 전략을 수정해야 될 때가 온 것이다.
3. 미래 : 최선을 다하지 않기로 했다. 2가지 일에 모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그렇다고 성공적인 결과를 보장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그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이 전략을 고수하는 것은 실패를 스스로 불러들이는 것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우선 회사일은 적당히 한다. 상사가 시키는 일에 크게 의문을 갖지 않고 바람직한 조언을 하지도 않은 채로 수행한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상사가 지도록 나는 철저히 선을 긋고 내 위치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만 한다. 학교 수업이나 공부도 전략적으로 한다. 내가 못하는 과목이던 잘하는 과목이던 구별하지 않고 A 학점을 받겠다는 과거의 모범생 마인드를 버린다. 졸업에 필요한 평균평점을 맞추기 위해 못하는 과목에는 시간을 적게 투자하고, 잘하는 과목은 A 학점을 받을 수 있게 공부한다. 그러면 평균은 얼추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 전략을 수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전에는 조바심이 났다.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아 성과를 내고 싶고, 학업에서도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욕심을 부렸다. 이제는 체력과 시간의 한계를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제약 하에서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전력이 필요한 때다. 나이가 들었더니 유연한 목표 설정과 누적된 경험치가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실패하기 전에 중간중간 점검을 하고 방향을 수정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