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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phapha Jan 08. 2020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있을 세 가지 질문

골치 아픈 일들을 가장 초연하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이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는 것이다.

작년 연말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 처음으로 유방 엑스레이 촬영을 했고, 왼쪽에 작은 결절이 보이니 6개월 후에 추적검사를 받으라는 진단을 받았다.

갑상선 암처럼 '암입니다'라고 확진하고, 바로 수술 날짜를 잡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여유가 있나 보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건강검진 결과지를 우편으로 보내준다는 안내전화를 받고 난 후 잊고 있던 진단 생각에 기분이 다운되었다.

병원 측에서 다시 한번 '6개월 후에 꼭 검진받으세요'라고 말을 했기 때문이다.

아이와 놀고 있었는데 더는 집중할 수가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난 뒤 들었던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찰나의 질문들이 내가 남기고자 했던 것들을 알아서 정돈시켜주었다.



파랑바다의 겨울, 노랑낙엽의 가을








첫째, 내가 내일 죽는다면 꿈이라고 생각하며 노력하는 일들 중에 무엇을 지속시킬 수 있을까?

그림책이 좋아서 책을 읽고 봉사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꿈으로 노력하여 더 확대시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스로 자문해보았다.

내가 진심으로 그림책에 매달리고 싶은 게 맞는 건지 아니면 나 스스로가 책을 읽거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게 그저 좋은 것뿐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은 맞지만 죽는 날까지 시간을 쏟을 수 없다면 꿈으로의 연결은 가능성이 희박하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그게 꼭 직업이 될 필요는 없다라면, 나는 지금 이대로도 참 좋다고 생각한다.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매번 행복하고 감사한 기분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책이 곧 내 직업이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면, 죽음 앞에서도 나는 그림책 책 읽기와 읽어주기를 계속할 것 같다.


둘째, 내가 내일 죽는다면 아이와 남편에게 무슨 말을 남기고 싶을까?

무조건 책과 함께 즐겁게 살아달라고.

책 속에 길이 있고 답이 있으니 무조건 책은 평생 끼고 살아야 한다고, 그리고 내가 그랬듯이 긍정적인 마음으로 즐겁게 살라고 말할 것 같다.

살아오면서 몇 번씩 내 인생의 좌절을 맛보았을 때 나는 책을 읽었다.

무슨 책인지 정확히 기억에도 머물러 있지 않고, 중고등 시절보다 사회생활하면서 읽었던 책들이 더 많았다는 게 항상 아쉬웠지만 읽는 과정 중에 내가 깨어나고 고민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었던 시절들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책 보다 더 효용가치가 높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셋째, 내가 내일 죽는다면 나는 오늘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될까?

그 질문에 답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내가 해야 하는 일도, 그리고 내가 먹어야 하는 음식까지도 말이다.

나는 평소대로 읽고 싶은 책을 꺼내 읽고, 좋은 구절은 필사를 하고, 싱싱한 야채와 과일들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글들을 써내려 갈 것 같다.

기록을 남기는 것이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위로와 위안이 되길 바라며, 그리고 우리가 함께했던 추억들을 다 담을 수는 없지만 내가 어떤 생각과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는지, 성장하는 딸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글 속에 조언을 남기길 바란다.

내 인생에서 후회했던 일들은 아마도 미리 고백했을 테고, 오늘의 나의 기분에 대해, 가족들에게 부탁과 당부에 대한 글을 남기고 있지 않을까.

앞으로도 나는 계속해서 글을 써나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그러나 사람들은, 삶과 죽음은 하나라서 우리 곁에 늘 죽음이 머물러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한 번씩 큰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과 같은 - 건강상의 이유나 갑작스러운 사고를 경험하기 전까지는 구태어 죽음을 의식하면서 사는 삶이란 피곤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나 역시 한 번도 죽음을 미리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의 건강이 문제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 인생의 큰 한방이 로또가 아닌 건강문제로 말썽을 일으키고 내가 그 순간을 계속 의식하면서 살아가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하지만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쪽인 만큼 내 과거의 식습관이나 생활습관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생긴 당연한 결과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다음 단계들이 좀 심플해진다.

먹어야 하는 음식보다는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에 좀 더 집중하게 되고 (여전히 어렵지만), 소소한 스트레스로부터 거리를 두는 일은 이전보다 훨씬 수월해졌다.

죽음으로 가는 길에 우리는 늘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렇게 쓰고 나니 철학자도 아니면서 삶에 대해 꽤나 고심한 사람처럼 보인다.

삶이 곧 자신이니까. 고심해봐야 한다. 나는 고심해본 사람이 맞다. 뒤늦게.

어제 하루는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연설문 중 일부를 곱씹어 보게 됐다.

-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처럼 산다는 것에 대해.

  


                                                                                                                                                                                     


@byphap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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