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리핀 마닐라 롤롬보이 김대건 신부 성지
필리핀에서 유학을 하며 천주교 예비신자 교육을 받고 있는 막둥이 덕분에 마닐라 근교 롤롬보이에 위치한 김대건 신부 성지에 갈 기회를 만났다.
마닐라에 있는 한인 성당 이름이 "마닐라 성 김대건 한인 성당"이다.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궁금해하던 차에 만난 뜻밖의 기회였다.
주일 미사를 마치고 예비신자 8명과 막둥이 보호자인 나, 그리고 담당 수녀님을 태운 미니버스는 마닐라 외곽인 롤롬보이로 향했다.
운 좋게도 교통 체증이 없던 그날, 1시간 조금 더 걸려 성지 입구에 도착.
사유지 내에 위치한 이 성지는 특별한 제제 없이 통과가 가능했다. 풍광이 좋은 이유로 사진을 찍으러 오는 현지인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정자가 있는 이 위치가 가장 핫플레이스인 듯했다. 웨딩 촬영도 종종 이루어지는 장소라고 한다.
김대건(안드레아) 성인은 한국인 첫 사제로서 1821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1836년 16세의 나이에 약 6개월간의 육로 여행을 거쳐 '마카오'의 피리외방 전교회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중국에서 있었던 민란과 아편전쟁을 피해 1837년과 1839년 두 차례나 당시 이 자리에 있었던 '도미니칸' 수도회에서 생활했으며, 그 후 1845년 상해에서 사제로 서품 되었다.
그 후 비밀리에 귀국하여 전교활동을 펴다가 1846년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 성지 내 김대건 성인상 안내문 요약
정성스레 관리되고 있는 작은 박물관으로 향했다. 기와를 표현하고자 한 듯한 지붕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제 김대건 신부를 마주할 시간~
모두들 이 초상화를 보자마자 감탄을 했다.
"우와~ 신부님 훈남이시다~^^"
과연 부드러운 인상의 소유자, 지성과 신심이 철철 넘치는 분이셨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곳에 머무시는 동안 오고 갔던 서간물들.
갓을 쓰고 성서를 들고 있는 익숙한 듯 낯선 청년 김대건 상.
한국의 솔뫼성지 등도 소개를 하고 있었다. 이 자료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리핀 스럽게 정성스레 준비된 전시물임에는 틀림없지만 한국에서 충분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자료가 아닐까 하는 단상이 스쳤다.
작은 두 개의 액자가 참 맘에 들었다. 조선의 청년이었던 그분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는 그림 같아서...
김대건 신부 생가의 모습.
할아버지 대부터 천주교 집안이었다고 한다. 물론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순교자이다.
이 전시물은 청년 김대건이 배를 타고 이곳으로 와서 요양을 하던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가운데의 망고나무 아래 앉아 고국에서 온 편지를 읽으며 고향을 그리워하셨겠지...
귀국하여 전교활동을 벌이던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재현한 전시물도 있다.
얼마나 고문이 심했으면, 걷지도 못하고 저리 매달려 갈 수밖에 없었을까...
참수 직후의 모습도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다. 끔찍하기보다는 오히려 성스럽게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너무나도 아픈 역사의 현장을 마주하고 나오니 절로 숙연해지는 마음..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기에 충분히 존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우러났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갈하게 운영되는 이 공간이 매우 소중하게 여겨졌다.
박물관 옆으로 나 있는 이 길은 청년 김대건이 배를 타고 이곳에 첫 발을 디딘 장소로 향하는 길이다.
지금은 막혀있지만 십자가가 있는 저 문을 통해 작은 쪽배를 타고 이곳에 도착하셨다고 한다.
각 층마다 기도처가 마련되어 있는 이 탑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표지석이 있는 바로 저 자리에서 청년 김대건이 휴식을 취하며 고국을 그리워했겠지.
예전의 망고나무는 없고 다시 식재한 나무라고 한다.
이 건물을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매우 성스러운 자리이다. 내부 사진은 찍을 수가 없어서 눈에만 담아 왔다.
김대건 성인상이다.
머나먼 타국에서 이 분의 발자취를 만날 수 있다는 건 참 행운이었다.
최양업 신부는 김대건 신부와 함께 유학을 했던 세 명의 조선 청년 중 한 분이다. 다른 한 분을 안타깝게도 풍토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성지순례를 마치고 다시 물가로 가보았다.
이곳 수녀님 말씀에 의하면 일몰이 무척 아름다운 장소라 한다.
이곳에서 일몰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겠다 다짐을 하며 순례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