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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후 Mar 28. 2023

인생 후반기, 필리핀 마닐라에 왔습니다.

- 필리핀 마닐라에서의 삶을 시작하며

 

작년 11월 중순, 필리핀에 올 때만 해도 단 3개월이면 족하겠다는 바람을 품고 왔었다. 한 달은 내겐 너무 짧은 시간일 것 같았다.     


코로나 19가 일상화되기 시작할 무렵 하늘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고, 필리핀 유학을 보내달라고 준비하던 막둥이가 지난해 7월 먼저 이곳으로 왔다. 사춘기의 터널을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막둥이는 본인의 선택인지라 무리 없이 힘든 내색 하지 않고 유학 생활에 적응을 해 나가는 듯했다.


막둥이를 핑계로 필리핀 단기 거주를 위한 준비 기간으로 1년을 꼬박 거치고 난 후 드디어 나도 필리핀행을 감행할 수 있었고, 운 좋게 겨울방학 어학연수생 2명을 받아 하숙집에 소개해 주게 되면서 이들의 관리를 목적으로 나도 덩달아 2개월 더 연장해 필리핀에 남게 되었다.   


  




몇 년 전 어느 책에선가 보게 된 피그말리온 효과(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이 문구가 내 카톡 프로필 대문을 장식한 이후 실제 나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경험하고 있었다. 정말 그랬다.     


40대 말을 거치던 해에, 50대를 맞이하게 되는 막연한 두려움에 맞서고자 많은 도전을 했다. 미라클 모닝, 새벽 독서, 모닝페이지, 필사 등등... 그땐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 시작한 거였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모든 것이 내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우연히 활공장 옆 카페에서 멍 때리다가 시도해 본 패러글라이딩은 내 인생 최대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아이들, 집, 시어머니, 일 등등의 무게를 내려놓고 시도했던 1박 2일의 첫 나 홀로 여행은 또 얼마나 멋진 도전이었던가!! 


마지막 도전의 결정타는 경이로운 내 모습을 깨닫게 해 준 타로 공부였다. 사람들을 대하는 게 두려워 시작한 타로 공부가 오히려 나를 똑바로 바라보게 해 주었고, 그 결과 남을 편견 없이 대할 수 있는 방법까지 터득하게 되었다.     


쫄보였던 내가 ‘소속감’과 ‘연대’라는 키워드를 실천해 보고자 발을 들여놓은 「더불어 숲」 이 모든 것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온라인 회원가입 후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함께 읽는 “담론 세미나”에 무조건 도전장을 내밀었다. 11월 필리핀행으로 인해 몇 달 밖에 참여를 할 수 없었지만, 짧은 기간 동안 일주일에 한 번 서울 나들이를 하면서 얻은 나의 경험치는 수치화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겨울방학 기간 동안 어학연수를 하던 한 친구가 필리핀 유학을 결심하게 되면서 나의 또 다른 삶이 시작되었다. 내가 간절히 바라던 바이기는 하나 너무나도 쉽게 기회가 온 듯하여 처음엔 믿기지가 않았다. 홈스테이에서 유학 생활을 하는 막둥이의 생활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가던 차에 막둥이와 친구 한 명을 데리고 직접 홈스테이 사업을 해보기로 결정하고 한국에 돌아간 지 3주 만에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막둥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 근처의 작은 콘도를 구해 세 명의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림을 시작했다. 5월 경에는 홈스테이를 할 집으로 이사할 준비를 하며 지금은 이것저것  알아보는 중이다.  

    

대중교통이 두려워 처음엔 그랩 택시만 타고 다니다가 목적지가 확실하면 일반 택시도 타보고, 장거리 여행은 버스로 이동한다. 누구나 다 가는 패키지여행코스 말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나 오지 등의 여행지를 찾아 혼자 다녀오기도 하면서 지금은 필리핀 생활을 조금씩 본격적으로 즐기고 있는 중이다. 최근엔 오토바이 택시에도 도전해 큰 짐 없이 혼자 이동하는 거라면 값싸고 교통체증 염려 없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여자 혼자서, 그것도 필리핀에서 어떻게 그렇게 혼자 돌아다니느냐는 걱정 어린 질문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러나 여러 곳을 다녀 본 결과 나는 내가 불순한 의도만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본다. 단지 언어의 장벽 때문에 불편함을 가끔 느낄 뿐이다.     


등산과 트레킹을 좋아하는 나는 구글 지도에 의지해 두 시간 이내의 거리는 걸어서 이동하는 것을 즐긴다. 한낮의 따가운 햇볕만 피할 수 있다면 가능하면 이 원칙을 지키려고 한다. 한국의 산이 그리워 등산이 가능한 여행지를 찾아다니는 재미도 쏠쏠하다. 현지에서 만나 팀을 이루어 함께 다닐지언정 또 하나의 원칙은 혼자서 하는 여행이다.     



세 명의 아이들과 3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 생활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늘 나의 공간이 없었다.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고독을 즐길 수 있는 혼자만의 공간을 늘 꿈꾸어 왔다. 이젠 그 꿈에 아주 가까이 다가왔음을 직감한다. 이국에서의 생활, 혼자만의 여행을 하면서 가끔은 지독한 외로움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토록 원했던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데, 왜?? 의문을 품고 또 그 답을 찾아가며 그렇게 새로운 삶에 적응해 나가는 중이다.    


 



여러 가지 막연한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과 설렘이 그것들을 이겨내게 해 줄 뿐이다. 행복이란 무얼까?      


공자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보다 더 크거나 작은 행복을 바란다. 하지만 행복은 그 사람의 몸 크기만 하다”라고 말했지. 맞는 말이야.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 크기만 한 행복이 존재하는 거지. 사랑하는 나의 제자이자 선생이여, 이게 바로 나의 행복이야. 나는 지금 내 몸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내기 위해 조바심하며 그 행복을 재보고 또다시 재보고 하지. 왜냐하면 사람의 크기는 항상 똑같은 게 아니라 계속 변하니까.

- 카잔차키즈,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     



나도 지금 내 몸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내기 위해 조바심하는 중이다. 지금 내 행복의 크기를 재보고 또다시 재보며... 사람의 크기가 계속 변한다는 카잔차키스의 소설 속 고백이 지금 너무나도 나에게 와닿는 이유와, 그와의 인연에 감사하며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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