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
최근 고용노동부가 '기간제/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기간제 근로자의 정규직화 흐름에 민간 기업도 동참하라는 의미다. 정부의 이러한 방침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근로자를 도리어 기간제 근로자로 전환시키는 기업도 상당수 있다.
당연히 정규직 근로자의 동의 없이 기간제 근로자 신분으로 일방 전환하는 것은 위법하여 무효다. 문제는 사용자가 들이민 기간제 근로계약서에 정규직 근로자가 무턱대고 서명하는 경우다. 이러한 계약 변경 역시 민법의 대원칙 '사적 자치의 원칙'에 따라 유효하다 할 수 있을까?
주변의 다른 노무사로부터 이러한 질문을 받고, 백방으로 판례와 행정해석을 뒤져봤지만 직접 연관되는 판례는 찾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근로자 본인이 서명한 것을 뒤집기 어렵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법원까지 갈 엄두를 내지 못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독자분들께서 혹시 아는 판례나 사례가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란다.
조심스레 사견을 펼친다면, 당사자가 서명한 경우 민법 103조 위반 즉 사회상규에 반하는 계약이거나 비진의 의사표시가 아닌 한 그 유효성을 부인하기가 무척 힘들 것으로 보인다.
'민법 103조'에 위반하는 계약이란 그 계약 내용이 강행법규에 저촉되거나 사회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계약을 말한다. 예컨대 이미 결혼한 아무개가 또 다른 사람과 결혼을 약속하는 것은 반사회적인 계약으로 무효가 된다.
'비진의 의사표시'란 아무개의 의사표시가 진심(진의)이 아님을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면 무효가 되는 의사표시를 말한다. 과거 부동산 계약 시 성행한 다운계약서가 대표적인 사례다.
즉 정규직 근로자가 이미 기간제 근로계약에 서명을 한 경우라면, 자책은 잠시 미뤄두고 본인의 사실관계가 위 두 가지 법리에 어떻게든 포섭될 수 있도록 머리를 굴려야 한다. 아래의 판례도 참고하기 바란다.
당사자 사이에 계약의 해석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어 계약문서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해석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 그와 같은 약정이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약정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대법원 2005. 6. 24., 선고, 2005다17501, 판결).
사용자가 근로자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고 이를 수리하는 의원면직의 형식을 취하여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킨다고 하더라도 사직의 의사 없는 근로자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작성·제출하게 한 경우에는 실질적으로는 사용자의 일방적 의사에 의하여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이어서 해고에 해당한다(서울고법 2020. 2. 11., 선고, 2019나2029189, 판결).
가령 정규직 근로자가 기간제 근로계약에 서명하는 경우, 그러한 계약서에 서명하면서도 퇴직금을 수령하거나 사직서를 제출한 바가 없다면, 사용자도 해당 근로자가 정규직 근로계약(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해지할 의사가 없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던 상황임을 유추할 수 있다. 정규직 근로계약이 종료되려면 근로자가 먼저 사직의 의사를 표시하거나 사용자가 해고를 하는 오직 두 가지 상황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보자. 사용자가 정규직 근로자로 하여금 기간제 근로계약에 사인하도록 하려는 '동기와 경위'는 무엇이며 이러한 계약으로 '달성하려는 목적'은 무엇일까.
사용자가 근로자를 계속 사용하길 원한다면 기존의 정규직 근로계약을 변경할 필요가 없다. 즉 사용자가 정규직 근로자로 하여금 기간제 근로계약에 동의하기를 원하는 것은 그 명칭이 비록 기간제 근로계약이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1년 혹은 2년의 기간 뒤에 효력을 발휘하는 사직서와 다를 바 없게 된다. 이 경우 직원들 전원에게 사직서를 제출토록 하고 그중 일부 인원만 선별하여 수리한 경우에서 법원이 그 사직서의 효력을 부인한 사례(대법원 1991. 7. 12., 선고, 90다11554, 판결)의 법리 등이 적용될 여지가 있다.
제일 좋은 것은 역시 근로자가 사용자의 이러한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근로기준법은 해고를 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을 요건으로 하고 있다. 사용자의 계약 변경 요구에 동의하지 않아 나중에 해고나 불이익이 발생하면 어쩌나 걱정하는 근로자도 있다. 글쎄, 사용자의 요구에 본인이 응하여 본인의 권리를 본인이 포기하게 되는 경우보다 큰 불이익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