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알려주는 직장 생활
不患人之不己知(불환인지 불기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치 말고
(니가 걱정한다고 남이 너 알아주는 거 아님)
患不知人也(환부지인야)
내가 남을 못 알아봤는지 걱정해라
(인정은 일방통행임 남한테 못해주는 거나 걱정해)
논어 학이편 중
논어와 맹자는 전공필수 과목이었다. 그땐 도덕 교과서 같던 논어보다는 맹자가 더 좋았다. 왕이 왕 노릇 못하면 그 왕 죽여도 무죄라는 맹자의 거침없음에 끌렸다.
그런데 사회생활하고, 깔끔하게 마감 처리되어 있던 내 마음의 모서리가 뭉툭해질수록 논어가 달리 읽힌다(물론 여전히 맹자가 더 좋다). 서두에 박아둔 저 구절이 최근 꽂힌 구절이다.
“남이 나를 못 알아볼까 걱정하지 말고, 니가 남 못 알아볼 걱정이나 해라”는 공 선생님의 참교육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면, 그저 나보다 뛰어난 사람 또 없는지 잘 살펴봐라, 하는 정도로 이해되겠지만, 저 구절은 아랫 바닥에 불편한 진실을 깔고 앉아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인정한다는 것은 일방통행이니라, 그러니 남이 너 알아보지 못하는 건 걱정하지 말고(니가 걱정한다고 니가 인정받는 게 아니거든), 니가 남을 인정 못해주는 건 아닌지 걱정해라(니가 갈구하는 인정을 누군가도 일방통행로에서 기다리는 중이란다). 공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이것 아닐까 한다.
모두가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티를 안 낼 뿐. 그래서 모두가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노력한다. 자기 인정 좀 해달라고. 그러한 인정 욕구가 가장 많이 드러나는 곳이 학교와 회사 아닐까 한다. 인정받기 위해 공부하고, 인정받기 위해 성과를 낸다.
그런데 우리는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면서, 인정의 대전제를 곧잘 잊는 것이다. 인정은 오직 일방통행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을! ‘이만큼 했으면 나 좀 인정받겠지?’ ‘이렇게 고생했는데 팀장이 인정해주겠지?’
유감스럽게도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일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인정받을만하면 받는 거고 아니면 오히려 고생만 하고 욕먹기 일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인정은 내가 하는 게 아니다. 남이 해주는 거다. 우울하면 내가 누구 인정 안 해주고 무시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보자.
“己所不欲 勿施於人” 이것도 논어 말씀이다(위령공편). 내가 당하기 싫은 건 남도 당하기 싫다는 의민데, 자기 노력이 후려침 당하는 게 싫은 건 남도 똑같다는 거다. 내가 인정 못 받아서 짜증 나는 만큼 다른 사람 인정해줄 건 인정해주자. 그것도 싫으면 그냥 퇴근해서 뭐 먹을지나 고민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