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어릴 때는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는 날이 정해져 있었다.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 생일.
나는 빛의 속도로 이동하며
1초마다 대여섯개의 선물을 던지고(?) 다니는
산타할아버지는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어린 마음에
산타할아버지가 주는 선물을 받고 싶었고,
'나홀로집에' 같은 영화를 보며 선물을 받는 상상을 하곤 했다.
앙상했던 그 상상은 점점 커졌고
유치원 크리스마스 행사때 기대는 절정에 달했는데,
차례차례 선물을 나눠주던 산타할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르지 않고 돌아가 버렸을 때
나는 더없이 서럽게 울었다.
그 채찍질은 과대망상을 줄이고
근거 없는 낙관을 하지 않는 것에는 효과적이었지만
반대로 긍정적인 사고와 자신감을 가지는 데는
비효과적이었다.
이루거나 하게 됐을 때는
내가 스스로 잘했기 때문, 보다
징크스를 잘 피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생각을 먼저 했고
실패했을 때는 반대로
내게 부족한 것이 있었기 때문, 보다
상상을 절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먼저 하면서
점점 악순환에 빠졌다.
대학생활을 거치며
방구석 찐따 같은 나를 바꾸고자
수업과 과제는 멀리해도
사람과 술자리는 피하지 않았고
학생회 활동에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그렇게 다음 연도 학생회장 선거 입후보 회의에서
내 이름이 거론되고,
집행부 측 후보로 만장일치가 됐을 때.
그때 난 처음으로
시험 점수 외에 내 노력으로 어떤 것을 얻었고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징크스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연애와 같이
섬세하게 마음을 들여다봐야 하는 것들에는
마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사람은 잡으려 할수록 멀어졌고,
관심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다가왔다.
결국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제일 매력적인 것인가,
라는 결론을 내린 적도 있다.
쓰다 보니 사실 알 것도 같다.
내가 썸을 잘 못타는 이유를.
알고 있다.
징크스나 머피의 법칙 따위
논리적인 근거는 1도 없는
자기 합리화일 뿐.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기다리는 것.
실패했다면? 다시 도전하면 된다.
내 안으로 스스로 솔직하게 생각하고
내 밖으로 타인에게 솔직하게 드러낼 것.
장점을 과장없이 드러내고,
약점을 여과없이 받아들이고 인정할 것.
자기 비하 없이, 남탓 없이.
그러다보면 어느새 징크스따위,
있었는지도 모르게 원하는 것을 이뤄내는 삶을 살고 있겠지.
그렇게 나는 오늘도 징크스에 도전한다.
나는 오늘도 기적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