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들은 외국에 참 많이 나가 살고 있다. 어린 시절 함께 살았었던 여섯째 이모도 어느덧 상해 생활 10년 차다. 1년에 한 번 한국에 들어오면 우리 엄마 집에서 생활한다. 이모부까지 오시는 건 드물지만 이번에 어쩌다 보니 이모네 식구 모두가 한국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조카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싶었던 건지 제안을 하시길래 주저하지 않고 나갔다. 참 오랜만에 함께 먹는 밥이다.
무더운 여름을 알리려는지 비가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친정엄마가 좋아하는 메밀국수 잘하는 곳에서 다 함께 모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를 마치고 소화도 시킬 겸 건너편 카페로 갔다. 친정엄마 친구가 운영하는 곳이라 비싼 음료수와 우리 복이 들의 디저트도 한 가득 시켰다. 방금 밥 먹고 온 식구들이 맞는 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어둑어둑 해졌다. 역시, 우리 딸들은 제한시간이 다가왔나 보다. 이리저리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결국 사고 한번 쳤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민폐녀가 되기 시작했다. 남들이 보면 그냥 넘어갈 일이었을 테지만 엄마인 내 눈에는 지나친 행동으로만 보였다. 결국 두 아이는 카운터 옆 구석에서 혼났다.
어른들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결단코 아이들에게는 재미있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나 몸이 비틀렸을까? 그 정도 참아 줬으면 우리가 알아서 일어났어야 되는데 어른들의 수다 본능을 주체 못 한 탓이다. 덕분에 복이 들만 혼났다. 그럼 집에 가야지, 또 뭐 그리 할 말이 많았을까. 결국 가만있지 못한 행복이를 혼내고 말았다. 친정엄마는 손녀가 안쓰러웠나 보다.
" 엄마가 저렇게 애를 잡으니 지는 애 키우기 쉽다는 소리가 나오지."
가만 생각해 보니 그렇다. 강압적이고 무서운 모션을 취했던 나에게는 '육아가 제일 쉬웠어요 라는' 말이 잘 튀어나온다. 나와 행복이를 가만히 보던 이모부는 한술 더 뜬다.
" 그러다 나중에 애가 크면 너 복수당한다."
그 순간 나는 뭐가 그리도 불편했을까?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누군가에게는 어처구니가 없을 말을 해 버리고 말았다.
" 괜찮아, 나도 엄마한테 복수했어."
다들 그냥 웃어넘겼다. 나는 속으로 무언가 심히 뒤틀리는 느낌을 받았다. 나 또한 강압적인 부모님의 양육방식을 받아 온 터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 한번씩 보이는 내 안의 못 된 모습이 틈만 보였다 하면 나오는 탓에 죽을 맛이다. 내가 힘들었으면 내 자식에게는 하지 말아야 하는데... 참 그게 안된다.
" 그런데 부모는 그게 복수인 줄 모른다..."
엄마의 저 한 마디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날 좀 두지 그랬어?'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 오른다. 아... 그런데 엄마는 내 복수를 복수로 여기지 않았구나. 결국 내가 졌네. 이게 뭐야. 나 혼자 열 받고 나 혼자 화내고. 참 못났다.
카페에서 내려오는 길에 행복이가 또다시 떼를 쓰기 시작한다. 결국 나도 폭발하려는 찰나
" 너 복수당한다."
" 까지껏 해보라 그래."
" 어이고? 무섭지도 않나?"
엄마는 속으로 '복수'라는 단어를 아마도 평생 가져갈 듯하다.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순간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나는 여전히 엄마 앞에서 어리광 부리는 사춘기 소녀다.
실은 내가 살아가면서 엄마에게 하고 있는 최고의 복수는 엄마가 원하는 틀을 벗어나 지금의 나로 살고 있는 모습이다. 참 밉겠지. 원망스러울 것이다. 이런 딸을 왜 낳아서 그리도 마음에 상처를 입는지... 미안하고 미안하다. 미안하면서도 엄마가 원하는 삶이 아닌 내 삶을 살아내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게 내 복수다.
당신이 하라는 데로 살기가 너무 싫어 평탄한 길을 살지 않았지만 지금이 행복하다고 외치는 게 복수다. 엄마의 눈물을 외면하고 내 뜻대로 살아서 미안하지만 그게 복수다. 참 못됐다. 나란 딸.
딸아 엄마는 아직도 내 엄마 앞에서는 사춘기 소녀보다 못한 어리광을 피운다. 내 엄마의 육아 방식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안다. 다만, 그 방식이 나에게는 너무 맞지 않았던 것인지 아직까지 어리광 같지 않은 어리광을 부린다. 엄마가 취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들고 엄마가 살아가라고 제시하는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다면 엄마를 속상하게 해도 괜찮아. 네 삶을 멋지게 살아라. 30살 넘어 엄마에게 어리광이랍시고 복수를 했다고 외쳐도 네 삶을 멋지게 살아내고 있다면 그걸로 됐다. 결국 나도 엄마인지라 네 복수를 복수로 여기지 않을 것 같구나. 나중에 내가 딴 소리 하거든 이 글을 꼭 보여줘라. 나도 사람인지라 내가 관대하게 내버려두었던 부분을 잊어버릴 수 있거든. 이 글은 나중에 널 위한 글이 될 수도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