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사춘기를 지독히도 겪었던 나는 참 못난 딸이었음에 틀림없다. 잠시나마 나를 엄마보다 더한 사랑으로 돌봐주신 외할머니에게 훗날 하늘나라에서 왜 그리도 내 딸을 힘들게 했냐고 나를 질책한다면 단 한마디도 못 할 것이 분명할 만큼 친정엄마를 괴롭혔다. 나의 어린시절 내면의 성장통은 지독히도 길었다. 그 과정을 모두 침묵으로 지켜봐야만 했던 아버지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나는 그렇게 참 못났고 힘든 과정을 오롯이 나 혼자서는 겪어 낼 힘이 부족했다. 그래서 되도 않는 똥고집으로 엄마를 못살게 굴었다.
가수 양희은님의 노래 중에 ‘엄마가 딸에게’ 라는 노래가 있다. 딸은 엄마에게 외친다.
-항상 예쁜 딸로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미운 털이 박혔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알고픈 일들 정말 많지만
엄만 또 늘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내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지
그게 중요한 건 나도 알아
나도 애쓰고 있잖아요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
나의 삶을 살게 해줘-
그때의 나는 정말 이 노래의 가사 그대로 엄마에게 외치고 있었다. 감히 엄마의 상처를 바라볼 틈이 없이 내 감정을 앞세워 내뱉기 바빴다. 그게 서로에게 지독한 독이 될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로 엄마의 감정을 상처내기 바빴다. 그 방법이 내가 내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어리숙한 생각으로 말이다. 엄마와 나 서로에게 너무나도 힘든 사춘기의 여정이었다. 그에 반해 엄마는 날 위한다고 외친다.
-항상 어린 아이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 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엄마 자신이 살아보니 너무나 힘들었던 세상이었을까? 나에게 본인이 살아온 인생의 반대되는 길을 나에게 제시해 주었음이 틀림없다. 내가 아이 엄마가 되어보고 나니 이제야 알겠다는 그 초보엄마의 마음을 우리 엄마도 뼈저리게 느끼었던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처음 인생을 살아가는 내 입장에서는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는 게 맞는 것이다. 엄마가 아무리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던져 주어도 나에게는 지금당장 필요한 것들이 아니기에 버겁게만 느껴졌다. 항상 도망 다녀야만 했고 항상 배척해야만 했다. 평생을 순종적으로 살아온 나에게 더 이상 순종이란 것이 버거워 지는 때가 온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요구에 지쳐버리고 만다. 엄마는 그게 다 날 위한 것이라며 채근한다. 자신이 제시해 주는 길로 가라고 채찍질을 해댄다.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라는 짐을 지워 둔 채로 멀어져만 간다.
엄마도 알고 있다. 아니, 여전히 당신의 방식이 옳다고, 당신은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다. 사람이 아픔의 강도를 느끼는 것이 다 다르듯이 버거움의 정도도 느끼는 게 전부 다르다. 내가 너무 유난떨었던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 못 견디고 떨어져 나가는 나약한 존재로 느꼈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엄마는 나에게 안타까움을 속으로 삭히며 그랬을 수도 있겠다.
한 때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했던 동생 다영이는 막내가 태어남과 동시에 서열이 뒤로 밀리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스스로를 애교덩어리로 만들어 궁둥이를 들이밀며 나와는 다른 말솜씨로 부모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아이다. 지금도 친정엄마는 다영이에게 의지하는 부분이 참 많음을 느낀다. 그 아이는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가도 부모님의 원하는 뜻대로 금방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신기한 아이였다. 하고 싶은 것 또한 결국 해내기도 했다. 재능도 많고 능력도 많은 사람이다. 여전히.
아이 엄마가 된 나는 다영이에게 진지하게 물어봤다. 어떻게 너는 너를 다 내려두고 부모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갔냐고. 웃으면서 나에게 한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 언니가 하고 싶다는 고집을 부리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 엄마 아빠의 뒷모습을 보는 건 나잖아.”
동생이 한 단어 한 단어 내 뱉을 때마다 내가 얼마나 못났던지 고개를 차마 들 수 없었다. 그래도 자기는 괜찮다며 웃어 보이는 동생에게 미안하다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동생이 나보다 더 성숙해 보였다. 그게 그날의 내 느낌이다. 부끄러웠다. 내 못난 모습을 감추려 나는 동생에게 또 상처를 준다.
“ 너가 바라는 인생은 왜 가만히 두는데? 그렇게 살아갈 용기가 없는 건 아니고?”
동생은 그저 웃었다. 그 날의 우리 자매가 나눈 대화의 끝이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내 동생은 엄마가 바라는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었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친정엄마의 마음도 같았다. 내 아이가 조금 더 원하는 길에 빨리 정착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주었을 뿐이다. 동생은 그 방향을 내 것으로 잘 흡수해서 조금 더 편하고 안전한 길로 갔다. 물론 결과로 향하기 위해서 남들보다 더한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지 엄마의 조언을 발판 삼아 좋은 방향으로 가는 길에 온전히 집중했다는 게 나와의 차이점 이었다.
나는 그 때의 좋은 지름길이 싫어 모험을 택했다. 모험의 길은 실로 험난했다. 반항이라는 것을 해서 얻은 거라고는 삶에 대한 깡다구라고 해야 할 듯하다. 정해진 길이 싫어서 이리가보고 저리가보고, 삶의 길에 재미있는 것이 있을지 없을지, 남들 보다 더 신나게 살 수는 없는지 기웃 기웃 거리며 탐험했다. 그러나 삶의 모험은 단연코 아름답지 않다. 매 순간 순간이 위험이고 난관이다. 어떤 이들은 오지 탐험가를 보고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궁금해 한다. 탐험가들은 그것이야 말로 그들의 삶이다. 누구든 삶을 살아가는 방식 다 다르다. 나는 내 방식대로 삶을 모험으로 택했다. 그게 동생과 나의 차이다.
지독한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와서 무엇이 남았는지 뒤를 돌아본다. 친정엄마는 욕한바가지를 할지 모르겠지만 난 내가 살아온 인생이 참 좋다. 재밌었다. 앞으로도 재밌을 것 같다. 나의 성장 통은 지독히도 길었고 아팠다. 나뿐만 아닌 내 주위사람들도 힘들게 했다. 걱정된다는 엄마의 말을 무시로 일관하며 지냈던 지난날을 후회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의 지독한 성장 통을 함께 견뎌내 주어서 감사할 뿐이다. 성장 통 뒤에는 항상 달콤한 보상이 있기 마련이다. 그 보상을 즐기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나로 산다.
딸아. 너희가 선택한 삶의 길이 무엇이든 지켜볼 수 있는 엄마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 같아. 내가 지독한 성장 통으로 내 엄마의 눈물을 모른 척 했기에 나는 감히 너희들의 길을 내 마음대로 정해줄 수 없을 것 같구나. 안전한 길을 택하든 험한 길을 택하든 너희들의 선택을 항상 존중할 수 있는 엄마가 되길 간절히 기도하는 게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고민한다. 지독한 사춘기가 오더라도 현명하게 대처 할 수 있는 엄마가 되도록 늘 항상 노력할게. 훗날, 뒤 돌아 봤을 때 온전히 너희들의 삶을 즐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