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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경 Feb 18. 2024

억울한 게 없는데 억울하고 귀여울 게 아닌데 귀여워



  "아아악!!"

  "엄마 바보."

  "엄마 바보."

  우리 집 뚱냥이도 올라가 있기 위태로운 소파 윗부분에 걸쳐 누워서 잼이가 도발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미뤄뒀던 집안일을 주말의 막바지에 해내느라 바쁘다. 또다시 잼이 소리를 지른다. 이번에 화살은 자기 자신을 향한다.


  "아악! 내가 바보. 내가 세상에서 제일 바보!"


  잼이가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압박감이 아닌 다른 감정에 휩싸여 일요일 하루를 보낸 걸 긍정적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오늘 잼이는 한 번씩 소리를 지르곤 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는 변명과 자신을 자책하는 말들을 뒤섞어 내뱉으며 돌아다니는 게 저녁이 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이 문장을 써보고 싶어 썼으나 사건의 전말이라고는 할 것도 없는 단순한 일의 원인과 결과는 이렇다. 어제 방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드라마 <킬러들의 쇼핑몰>을 보다가 잠시 드라마를 멈췄더니 집안이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고 고요해도 너무 고요했다. 이것 봐라. 낌새를 채고 잼이 방을 급습했다. 역시나 친밀해도 너무 친밀한 아이패드와 아예 한 몸이 된 태세다.


  "패드 가지고 나와. 얼마나 썼는지 볼 거야."

  잼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가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비친다. 불안한 어조로 되물었다.

  "언제 볼 거야? 지금? 지금 볼 거야?"

  "엄마가 며칠 전부터 이야기했잖아. 불시에 볼 거라고."

  이렇게 말은 자주 했지만 진짜로 확인하는 건 가끔 있는 일이라 이번에도 그냥 그런 줄 알았나 보다.

  "엄마, 나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해. 잠깐만, 엄마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나한테 패드를 넘기고 화장실로 도망치듯 사라지는 잼. 지난 일주일간 도대체 얼마나 썼길래 저렇게 발이 저려서 저러나. 나 또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듯했다.


  최근 일주일간 나와의 약속을 많이 어기진 않았다. 이 정도는 넘어가줄 수 있지, 웃으며 패드를 넘겨줄 수 있겠다고 생각한 순간, 오늘 사용한 시간을 발견했다. 정말? 정말이라고? 정말 이 시간을 했다고? 약속한 시간을 넘겨도 한참,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을 넘겼다.


  화장실을 다녀와 내 눈치를 살살 보는 잼에게 처분을 내렸다. 학원에서 사용해야 하는 시간 말고는 절대 금지, 압수. 이 처분은 기한을 정하지 않겠다. 항상 일주일이면 일주일, 한 달이면 한 달, 이렇게 기한을 정해 내렸던 금지 명령을 기한을 정하지 않고 내리자 잼이는 더 혼란스러워했다. 어떻게 하면 기간을 줄여주나 어떤 상황에서든 엄마에게 협상을 꾀하려는 잼이답게 나를 이리저리 떠보지만 묵묵부답했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거 없다. 그만해."




  오늘 아침부터 잼이는 나라 잃은 백성처럼, 아니 나라를 팔아먹고 후회하는 백성처럼 상황을 부정했다가 자신을 부정했다가 난리가 났다. 그래도 벌을 내린 엄마를 탓하진 않았다.


  "24시간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일요일 저녁인 게 싫어서 하는 말인가 싶어 나도 그렇다고 그랬더니 그게 아니란다. 어제 그렇게 게임을 많이 하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 후회할 짓을 안 하길 바라서란다. 어제의 나, 왜 그랬니를 반복하며 어제 왜 그렇게 평소보다 많이 했는지 상황을 돌아보며 분석하기 시작했다. 게임에서 어떤 상황이 있었고, 누가 어떤 말을 했으며 그래서 자신이 그것을 보기 위해 들어갔으며 어쩌고 저쩌고. 자신이 한 일 자체를 반성하기보다 들키지 않게 꼼수를 부릴 걸 하는 종류의 반성을 좀 더 했던 나로서는 잼이의 반응이 참 평소 성향대로 바른생활스럽다 싶었다. 이렇게 딸이 잘못해도 좋은 점을 발견해 어떻게든 흐뭇하게 바라보는 나, 이것도 병 아닌가. 아니, 잼의 표현대로 광기 아닌가.




  "엄마, 이리 와."

  내가 자기 현재 상황을 쓰고 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갑자기 거실에서 나를 소환한다.

  "안 돼, 엄마 글 써."

  소환되지 않는 엄마에 투덜거리면서도 나한테 슬금슬금 오더니 또 마구 이야기를 투척한다. 아무래도 영 마음이 풀리지 않나 보다. 내 발 근처에서 배를 보여주고 드러누워있는 우리 집 뚱냥이 안콩이를 발로 살살 건들면서 잼이 말한다.

  "너무 짜증 나. 이게 다 안콩이 때문이야. 인정?"

  "아니."

  "아니야, 안콩이 때문이야. 안콩이가 너무 웃겨서 생긴 일이야."

  "아니."

  "억울해."

  벌을 내린 내가 너무하다고 들이대려고 그러나 싶어 방어적으로 뭐가 억울하냐고 물었더니 그런다.

  "억울한 게 없는데 억울해."

  그 감정이 뭔지 너무 잘알 것 같아서 웃음이 터져 나오려 했다. 혼자 그렇게 주변을 맴돌며 구시렁거리더니 다시 거실로 나갔다.


  아까 저녁에는 충분히 후회하고 있고, 너무 자책하나 싶어 그 모습이 가여워서 깜짝 선물처럼 벌을 멈춰줄까 싶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 나는 잼이가 너무 귀엽다. 좀 더 자신이 한 일을 책임지기 위해 어쩌고 저쩌고가 아니라 그냥 귀엽다. 그래서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미안하다, 이런 엄마라서.






잼 : 자기랑 엄마 엽사 찍기에 꽂혀있는 초등 중학년과 고학년 사이 어드매

엄마 : 잼과 띠동갑.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띠동갑에서 한 바퀴 더 구른 나이에 잼을 낳았지만 잼과의 수준 차이는 한 바퀴를 빼야 한다.





사진: UnsplashDaniel K Che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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