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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경 Feb 25. 2024

엄마한테 비밀이 열 개나 생겼어



  비밀은 우리 가족에겐 생존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비어있는 집에 도착했을 때, 시간을 맞춘 것처럼 거실 테이블 위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아버지는 오래 참지 못한다. 전화벨이 네 번 울리기 전에 받아야 한다. 신발을 채 벗지도 못하고 허겁지겁 달려가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는 언제나 전화로 엄마부터 찾았다. 나는 열쇠로 문을 열고 집에 들어왔다. 엄마는 집에 없었다. 엄마가 어디로 외출했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체 없이 대답했다. 엄마, 시장 가셨어요. 30분 안에 오실 거예요.



  나의 거짓말, 진실을 숨긴 이야기, 비밀은 이런 식으로 시작되었다. 남들이 들으면 그게 무슨 비밀이야 싶은 비밀들. 학교에서 막 돌아와서 엄마가 어디 갔는지 모른다는 일은 남들에게는 아무 일이 아니지만 우리 집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건 숨겨야 하는 비밀이 된다. 엄마의 소재를 알 수 없는 일은 아버지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가족은 자신의 통제 하에 있어야 한다.



  아버지의 통제에서 비롯한 가족들의 불안증은 수많은 사소한 비밀을 양산해 냈다. 서로 입을 맞추고 때론 서로 말이 달라져서 낭패를 보기도 하고, 엄마의 불안을 부추기지 않기 위해 엄마에게 털어놓지 않는 비밀을 만들기도 하고, 거짓말과 비밀이 뒤얽혀 무엇을 이야기했고 무엇을 감췄는지조차 헷갈리는 일상을 살아냈다. 그런 비밀들은 우리 가족, 아니 이제는 나의 원가족을 유지시키는 비결이 되어주었다. 곧 여든이 되는 아내와 쉰이 넘고, 마흔이 넘은 자식들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여든이 넘은 아버지를 맞춰주기 위해 약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진 가족구성원 몇은 여전히 비밀들을 만들어내 내게 공유한다.



  아닌 척 하지만 나도 그들에게 비밀들이 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화를 불러일으킬까 불안에 떠는 그들이 나의 비밀에 난리법석을 떨 걸 생각해 내 마음과 내 가족의 평화를 위해 만들어낸 비밀들이다. 이렇게 내 인생에서 내 평화를 지켜주는 건 비밀, 말하지 않음, 거짓말이다. 그런데 비밀이 몇 개냐니. 비밀을 셀 수가 있나.



  엄마한테 비밀이 열 개나 생겼어. 너무 많아서 마음에 걸려. 잼이 캄캄한 방 안에 누워 말했다. 나는 비밀의 개수를 세본 적도, 비밀을 가족이나 엄마에게 말한 적도, 말하지 않아 마음에 걸린 적도 없다. 어둠 속에서 잼은 눈을 초롱초롱 뜨고 말했다. 마음이 불편한데 엄마한테 혼날까 봐 말할 수가 없어. 나는 엄마에게 혼날까 봐 말할 수 없다고 엄마에게 말해본 적이 없다. 엄마에게 혼날까 봐 말할 수가 없다고 엄마에게 말을 할 수가 있다니. 나는 아직도 잼과 나의 이런 관계가 신기하고 이상하고 낯설고 감동적이다.






잼 : 개학을 일주일 앞둔 이제 곧 초등 고학년

엄마 : 잼과 띠동갑.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띠동갑에서 한 바퀴 더 구른 나이에 잼을 낳았지만 잼과의 수준 차이는 한 바퀴를 빼야 한다.





사진: UnsplashDima Pechu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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