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이경 Mar 10. 2024

재미없으면 그만두면 안 되나요



  "나 회사 그만둘까?"

  잼과 끌어안고 뒹굴뒹굴거리다가 불쑥 이야기를 꺼냈다. 툭 치면 나오는 고장 난 자판기처럼 '그만둘까.'를 혼잣말로 시도 때도 없이 해대던 때라 그랬던 거 같다.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아이에게 뱉어버렸다. 누구나 입사 첫날부터 꿈꾸게 되는 퇴사가 요즘따라 더 마려웠다.



  "왜?"

  "그냥, 재미없어서."

  내 말에 팔에 안겨있던 잼이 몸을 일으켜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재미없다고 그만둘 수 있어?"

  그런 일이 정말 가능하다니. 순진한 얼굴에 의아함을 한껏 담고 나를 바라보는 잼의 눈빛에 찔끔했다. 내가 실언한 건가. 재미없다고 그만두는 게 회사일 수 있나.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건가. 이런 자기반성은 둘째치고 엄마가 고작 '재미없다'는 이유로 일을 '포기'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건 아닌가 싶었다. 내 진짜 마음은 어떻든 우선 교육상 일보후퇴를 해야겠다 싶어 그냥 해본 소리라고 얼버무렸다.



  이렇게 잼이 때문에 회사도 그만 못 둔다고 자조 섞인 투덜거림을 지인에게 했더니 지인이 그런다. 당신 인생인데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그런다고 그만 못 둘 게 뭐냐고. 어라? 그러네? 듣고 보니 이 말도 맞다 싶었다. 나는 종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갈대 같은 인간인 건지, 네 말이 맞다, 네 말도 맞다 해주는 황희 정승의 정신을 이은 인간인 건지 모르겠다. 같은 이야기에 그러니까 그만두면 안 된다고 하는 동료 말에도 그 말이 맞다 맞장구쳤으니 말이다. 



  재미없다고 그만둘 수 없는, 혹은 그만두면 안 되는 일들에 대해 생각해 봤다. 잼이의 공부, 그리고 남편의 회사일. 그러면 나는? 나는 왜 회사를 다니는 걸까.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 근원적인 것부터 고민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다른 글에서 쓴 것처럼 그냥, 얼결이었다. 그냥 한 번 이력서를 써 보았고, 얼결에 면접을 보았고, 얼결에 첫 출근을 했고, 이렇게 그냥 어영부영 회사를 다닌 지 벌써 6개월이 되었다.



  회사를 다니는 순기능들이 있다. 돈을 번다는 만족감, 일을 해내는 것에서 느끼는 충족감, 자기 효능감, 가족과 부딪히는 시간이 줄어드는 데에서 오는 관계의 원활함 등등. 그런데도 입에 붙어버린 이 퇴사에 대한 욕구는 무엇이란 말인가.



  비단 나뿐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료들과 "퇴사하십시오."나 "퇴사하겠습니다."를 서로 유행어처럼 하는 걸 보면 말이다. 내기라도 할 듯이 누가 제일 먼저 그만둘까 점쳐보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게 참 우습고도 슬프다. 그렇다고 글에서 굳이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고 구구절절하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말하고 싶진 않다. 그냥 그만두는 사람이 많았던 전적이 있는 업무라는 것,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되겠지.



  하아, 갑자기 우울해졌다. 잼이의 뼈 때리는 말에 띵 한 대 맞은 것 같은 그 느낌을 무언가 즐겁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쓰다 보니 한탄인 것 같은 노잼 글이라 우울한데 더군다나 지금은 일요일 밤이 아닌가. 출근까지 12시간도 남지 않았다! 이러니 우울해질 수밖에.



  처음부터 이 회사를 오래 다니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얼마 전 만났던 친구가 벌써 그 회사를 다닌 지 십 년이 되었다고 했다. 그래, 잼이 아기일 때 입사한다며 지금의 나처럼 오래 다닐 생각 아니라고 했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니. 같은 회사를 계속 오래 다니는 자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그 녹록지 않음에 대해 이야기 들었을 때 나도 나중에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깐, 아주 잠깐. 그 이야기를 하는 친구가 좀 멋있어 보여서 잠깐, 아주 잠깐. 



  싫어도 하는 거, 중요하다. 한편으론 싫어도 무조건 참지 않고 거부하고 그만두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참을 사안인지 더 참으면 안 될 사안인지 그걸 판단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일을 그만두는 시점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동안의 나는 어떤 시점에 일을 그만두었나. 어떤 시점에 그만두어야 나 스스로도, 잼이에게도 납득이 될까. 웃으면서 퇴사할 날을 상상해 본다. 그날이 그리 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제 6개월 차인 주제에 바라본다. 누구나 마음속에 퇴사 하나씩은 있는 거잖아요.






잼 : 주말 내내 놀다 일요일 밤이 되면 숙제 초치기하는 초등 고학년

엄마 : 잼과 띠동갑.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띠동갑에서 한 바퀴 더 구른 나이에 잼을 낳았지만 잼과의 수준 차이는 한 바퀴를 빼야 한다.





사진: UnsplashAnisetus Palma




이전 09화 나도 남편의 큰딸이고 싶진 않은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