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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경 Mar 17. 2024

공식적으로 싸우고 화해는 사적으로



  대개 부부들은 애들이 있든, 없든 있는 힘을 다해서 싸웁니다. 그리고 화해는 누가 없을 때, 자기들끼리 합니다. 즉, 공식적으로 싸우고 화해는 사적으로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볼 땐 우리 부모님은 허구한 날 싸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화해하게 됐는지 모릅니다. 부모가 설명해주지도 않아도. 그럼 아이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부부는 싸우고 가만히 있어도 화해가 되는구나.' **




  "엄마, 엄마랑 아빠랑 언제 싸웠지?"

  "작년에 엄마 아플 때 싸웠지."

  "그건 싸운 게 아니라 그냥 엄마가 화낸 거 아니야?"

  "아니야. 엄마가 화냈더니 아빠도 화냈어. 싸운 거야."

  "응. 그랬구나. 그리고 또 언제 싸웠더라?"

  "언제지? 기억이 안 나는데."

  "한 일 년에 한 번 싸우나?"

  "그런가? 그거보다는 덜 싸우지 않냐? 몇 년에 한 번 싸우는 거 같은데?"



  갑자기 잼이 엄마랑 아빠가 싸운 이야기를 꺼냈다. 이건 또 뇌의 어느 구석에 있던 궁금증일까. 한 번씩 맥락 없는 질문을 던질 때마다 쿨한 척하기 힘들지만 어쩌랴.



  작년, 엄마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화냈던 게 기억에 남기는 했나 보다. 엄마랑 아빠가 다투는 걸 본 적은 있지만 그렇게 소리 지르는 건 본 적이 없으니 그랬겠지. 그날 몇 시간 후에 잼이 내게 와서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엄마, 아까 왜 그랬어?"

  나는 되도록 차분하게 있는 그대로 내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엄마가 정말 아파서 너무 힘들었는데 아빠가 그렇게 행동해서 서운했다고, 화가 났다기보다 너무너무 서운하고 속상해서 폭발한 거 같다고.

  "아까 엄마가 소리 질러서 놀랐어?"

  "아니, 놀라진 않았는데 왜 그러나 궁금했어."



  잼은 생각 보다 멘털이 센 것 같다. 엄마나 아빠의 행동에 그다지 타격을 받지 않는다. 그냥 관찰자의 시점으로 바라본달까. 물론 우리의 싸움이 간혹 있는 데다가 싸운다고 해서 그게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기 때문이겠지.



  공교롭게도 잼이 엄마 아빠의 지난 다툼에 대해 질문했을 때는 내가 책에서 위 인용 부분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너, 내가 이거 읽은 거 알고 이러는 거니.



  책에서 저 내용을 읽고 뜨끔했다. 우리 부부가 자주 다투는 건 아니라 잼에게 허구한 날 다투는 부모로 보이지는 않겠지만 생각해 보니 잼 앞에서 공식적으로 화해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잼이 궁금해하면 이러저러하게 화해했다고 대답만 해 주었다.



  엄마와 아빠가 화해하는 걸 보며 아이가 화해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데 그래선가 난 아직도 화해하는 법을 잘 모른다. 그냥 솔직하면 되는데, 내 감정에 솔직해져서 상대방에게 전하면 되는데 그걸 아직도 배워나가는, 화해 면에선 초짜 중 초짜다.



  화해 쪽은 잼이 나보다 낫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딸과 감정싸움을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잼이 먼저 내게 화해를 청하곤 한다. 혹시 알고 보면 인생 2회차인가 싶게 참 어른스럽게 군다. 화나있는 날 어르고 달래는 걸 보면 누가 엄마인지 딸인지 모르겠다.



  감정싸움이 아닐 때에는 진짜 엄마(?)처럼 어른스럽게 혼내고 고쳐야 할 행동에 대해 조언하기도 한다. 이건 내 엄마가 내게 했던 행동을 따라 하는 건데 이래서 보고 배운 게 중요하다는 건가 보다. 그런데 어머니, 화해하는 것도 좀 보여주지 그러셨어요.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보고 배운 적도 없으면서 화해를 잘 청하는 잼이 덕분이다. 어떻게 갈등 상황에서 알아서 행동하는 걸까. 이런 면은 아주 꼬맹이 때부터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잘 해내곤 했다. (오히려 사춘기에 가까워진 요즘엔 좀 삐그덕거리는 거 같긴 하지만.) 타고난 유전이라는 게 중요하긴 한 것 같다. 아무래도 우리 남편에게서 온 유전인 것 같으니. 물론 남편의 화해 기술이 요즘엔 날 향해있지 않긴 하지만, 쳇.



  자식을 키우면서 계속 배워야 할 게 수두룩이다. 아이의 사소한 질문에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일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답을 찾아보려고 생각한다. 아이와 함께 생각한다. 그렇게 아이가 조금씩 나를 키운다.



** 오십의 기술, 이호선






잼 : 주말 내내 놀다 일요일 밤이 되면 숙제 초치기하는 초등 고학년

엄마 : 잼과 띠동갑.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띠동갑에서 한 바퀴 더 구른 나이에 잼을 낳았지만 잼과의 수준 차이는 한 바퀴를 빼야 한다.




사진: UnsplashLong 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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