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부부들은 애들이 있든, 없든 있는 힘을 다해서 싸웁니다. 그리고 화해는 누가 없을 때, 자기들끼리 합니다. 즉, 공식적으로 싸우고 화해는 사적으로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볼 땐 우리 부모님은 허구한 날 싸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화해하게 됐는지 모릅니다. 부모가 설명해주지도 않아도. 그럼 아이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부부는 싸우고 가만히 있어도 화해가 되는구나.' **
"엄마, 엄마랑 아빠랑 언제 싸웠지?"
"작년에 엄마 아플 때 싸웠지."
"그건 싸운 게 아니라 그냥 엄마가 화낸 거 아니야?"
"아니야. 엄마가 화냈더니 아빠도 화냈어. 싸운 거야."
"응. 그랬구나. 그리고 또 언제 싸웠더라?"
"언제지? 기억이 안 나는데."
"한 일 년에 한 번 싸우나?"
"그런가? 그거보다는 덜 싸우지 않냐? 몇 년에 한 번 싸우는 거 같은데?"
갑자기 잼이 엄마랑 아빠가 싸운 이야기를 꺼냈다. 이건 또 뇌의 어느 구석에 있던 궁금증일까. 한 번씩 맥락 없는 질문을 던질 때마다 쿨한 척하기 힘들지만 어쩌랴.
작년, 엄마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화냈던 게 기억에 남기는 했나 보다. 엄마랑 아빠가 다투는 걸 본 적은 있지만 그렇게 소리 지르는 건 본 적이 없으니 그랬겠지. 그날 몇 시간 후에 잼이 내게 와서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엄마, 아까 왜 그랬어?"
나는 되도록 차분하게 있는 그대로 내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엄마가 정말 아파서 너무 힘들었는데 아빠가 그렇게 행동해서 서운했다고, 화가 났다기보다 너무너무 서운하고 속상해서 폭발한 거 같다고.
"아까 엄마가 소리 질러서 놀랐어?"
"아니, 놀라진 않았는데 왜 그러나 궁금했어."
잼은 생각 보다 멘털이 센 것 같다. 엄마나 아빠의 행동에 그다지 타격을 받지 않는다. 그냥 관찰자의 시점으로 바라본달까. 물론 우리의 싸움이 간혹 있는 데다가 싸운다고 해서 그게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기 때문이겠지.
공교롭게도 잼이 엄마 아빠의 지난 다툼에 대해 질문했을 때는 내가 책에서 위 인용 부분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너, 내가 이거 읽은 거 알고 이러는 거니.
책에서 저 내용을 읽고 뜨끔했다. 우리 부부가 자주 다투는 건 아니라 잼에게 허구한 날 다투는 부모로 보이지는 않겠지만 생각해 보니 잼 앞에서 공식적으로 화해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잼이 궁금해하면 이러저러하게 화해했다고 대답만 해 주었다.
엄마와 아빠가 화해하는 걸 보며 아이가 화해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데 그래선가 난 아직도 화해하는 법을 잘 모른다. 그냥 솔직하면 되는데, 내 감정에 솔직해져서 상대방에게 전하면 되는데 그걸 아직도 배워나가는, 화해 면에선 초짜 중 초짜다.
화해 쪽은 잼이 나보다 낫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딸과 감정싸움을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잼이 먼저 내게 화해를 청하곤 한다. 혹시 알고 보면 인생 2회차인가 싶게 참 어른스럽게 군다. 화나있는 날 어르고 달래는 걸 보면 누가 엄마인지 딸인지 모르겠다.
감정싸움이 아닐 때에는 진짜 엄마(?)처럼 어른스럽게 혼내고 고쳐야 할 행동에 대해 조언하기도 한다. 이건 내 엄마가 내게 했던 행동을 따라 하는 건데 이래서 보고 배운 게 중요하다는 건가 보다. 그런데 어머니, 화해하는 것도 좀 보여주지 그러셨어요.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보고 배운 적도 없으면서 화해를 잘 청하는 잼이 덕분이다. 어떻게 갈등 상황에서 알아서 행동하는 걸까. 이런 면은 아주 꼬맹이 때부터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잘 해내곤 했다. (오히려 사춘기에 가까워진 요즘엔 좀 삐그덕거리는 거 같긴 하지만.) 타고난 유전이라는 게 중요하긴 한 것 같다. 아무래도 우리 남편에게서 온 유전인 것 같으니. 물론 남편의 화해 기술이 요즘엔 날 향해있지 않긴 하지만, 쳇.
자식을 키우면서 계속 배워야 할 게 수두룩이다. 아이의 사소한 질문에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일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답을 찾아보려고 생각한다. 아이와 함께 생각한다. 그렇게 아이가 조금씩 나를 키운다.
** 오십의 기술, 이호선
잼 : 주말 내내 놀다 일요일 밤이 되면 숙제 초치기하는 초등 고학년
엄마 : 잼과 띠동갑.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띠동갑에서 한 바퀴 더 구른 나이에 잼을 낳았지만 잼과의 수준 차이는 한 바퀴를 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