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뭐라고? 어떻게 했다고? 이,이렇게?"
방금 들은 이야기가 영 접수가 안 되는지 잼이가 되묻는다.
"응, 그렇게 했다니까? 이렇게, 백허그를."
"뭐야, 아빠 죽어?"
"뭐?"
갑자기 잼이 입에서 나올 거라고 상상도 못 했던 말에 배가 아플 정도로 고꾸라져 한참을 웃었다. 이거, 내 또래들이나 하는 말 아닌가. '사람이 안 하던 짓 하면 죽는다'며 안 하던 짓한 사람한테 너 죽냐고 하는 말 말이다.
"아빠, 아빠가 안 하던 짓,크크, 해서 죽냐,크크,고?"
"응, 안 하던 짓하면 죽는다잖아."
"넌 어디서 또 그런 말은 주워 들었냐."
"주워듣진 않았는데, 흔남에서 나왔었는데."
우리 딸 정보의 출처 90%는 차지하는 '흔한남매'가 여기서 또 나오는구나. 그나저나 잼은 아빠가 도대체 술을 마시다 말고 무슨 유튜브 영상을 보고 그랬는지가 너무 궁금한가 보다. 하지만 아빠는 화장실에 들어간 이후로 잠잠무소식, 똥 때린다고 들어갔는데 찰싹찰싹 때리다가 죽은 건 아닌지, 살짝 가서 화장실 문을 두드려본다.
똑똑똑.
"왜."
살아있다.
"아빠 살아있네. 이제 들어가서 자라."
잼이가 엄마가 술을 안 마셔서 토요일 밤이 안 같다고 했던 토요일 밤, 음주 대신 늦은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방에서 혼자 유튜브 보면서 술을 홀짝이던 남편이 나오더니 갑자기 내 뒤에서 백허그를 하는 게 아닌가.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질문하니 계속 이게 백허그인지 백허그를 가장한 누르기 필살기인지 알 수 없는 힘을 가하며 대답하길,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그거 보니까 와이프 한 번 안아보고 싶었다고 했다.
"뭔 영상이길래 이러셔. 뭐 보다 보니 역시 부인밖에 없다 실감한 건가."
"아니, 그런 내용은 아니었는데."
"그래서 나밖에 없는 게 아니라고?"
"아니, 너밖에 없지."
"그래. 그런데 이건 언제 놓을 건지?"
갈비뼈 누르기 공격을 그제야 그만두고 남편이 방으로 사라진 뒤 나타난 잼에게 좀 전에 있었던 기괴한 일 이야기를 했더니 냅다 저런 반응이었던 거다. 아빠 죽냐고. 어쩜. 아빠가 엄마 백허그하는 일이 죽는 일이나 되는 거냐. 우리가 너무 잼한테만 애정표현하고 우리끼린 안 하고 살았구나 싶은 순간이다.
술을 마시지 않은 토요일 밤을 지나고 숙취 따위 없는 말끔한 일요일 아침을 맞아 숙취에 시달리고 있는 남편에게 물어봤다. 대체 어제 무슨 영상을 본 거냐고, 잼이가 당신 죽냐고 그랬다고. 그랬더니 딱히 어떤 영상을 본 건 아니고 음악 듣고 그러다가 우리 부인 한 번 안아줘야겠다 그랬다고. 으응, 혼자 술 마시고 감성에 취하셨구먼. 완전 T 중에 T인 남편이 이게 뭔 일이야 싶었다. 이래서 내가 남편이 술 마시는 걸 좋아하나 싶기도 하고. 술 마시면 T에서 F쪽으로 살짝 이동하는 낌새가 보이니까.
열두 살 잼이에게 아기 때부터 여전히 해주는 것 중에 하나가 잠자리에 들 때 자장가를 불러주고 "잘 자,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이다. 남편도 잼이 이제 잔다고 하면 와서 볼에 뽀뽀해 주면서 "잘 자, 사랑해."라고 말해주고 간다. 실은 나도 남편도 애정표현과는 그리 친하지 않은 캐릭터인데도 딸에게는 그렇다. 나름 십 년 넘게 세뇌시킨 덕에 잼이도 자기 전 엄마 아빠에게 "잘 자, 나도 사랑해."라고 꼭 이야기한다. 애정표현은 이렇게 잼을 향해 있고, 잼이는 우리에게 향해있다. 나와 남편 사이의 애정 표현은 "야! 너 이 씨!" 아니면 발로 엉덩이 차기 정도이고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런데 '아빠 죽어?' 이 한 마디에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남편에게도 뜬금없는 사랑 고백, 애정 표현 좀 해야겠다 이런 생각. 어멋, 이렇게 '이래야겠다~' 새나라의 어린이처럼 다짐하면서 글 끝내는 거 진짜 싫어하는데 오늘은 해야겠다. '남편에게 잼에게 하는 거 반의 반이라도 좀 표현해야겠당~.'
잼 : 주말 내내 놀다 일요일 밤이 되면 숙제 초치기하는 초등 고학년
엄마 : 잼과 띠동갑.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띠동갑에서 한 바퀴 더 구른 나이에 잼을 낳았지만 잼과의 수준 차이는 한 바퀴를 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