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의 핑퐁.
"엄마, 우리나라 애들 스마트폰 중독 많은 거 알지."
"응, 알지."
"그게 애들이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거야. 해야 하는 게 너무 많잖아."
"응, 빡세지."
"그래서 스마트폰 중독으로 빠지는 거래."
"뭐, 그러겠지. 근데 우리나란 애들만 그런 게 아니라 다 빡세. 살기 빡빡해."
"응, 그런 거 같아."
이쯤에서 언제나 나오는 우리 집 뚱냥이 안콩이의 묘생 예찬론. 잼과 나는 일주일에 한 번쯤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인간은 왜 이렇게 해야 하는 게 많냐, 그냥 우리 집 안콩이처럼 살면 안 되냐. 쟤처럼 저렇게 단순해지면 행복할 텐데 왜 이렇게 인간은 복잡하게 사냐. 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어찌 됐든 우리는 인간이고, 그것도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인간이니 어느 정도는 맞춰서 빡세게 살아야 한다는 걸로 끝난다. 알고 보면 나도 잼이도 살짝은 벗어나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범생 과라서 남들이 하는 것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살기 빡빡하니까 사람들이 애를 안 낳지."
"맞아. 자기 살기도 힘든데 누가 애를 낳으려고 하겠어. 힘든데."
"그러니까. 그런데 너 그거 알아? 애 많이 낳게 하겠다고 정부에서 내놓는 정책들이 애 낳으면 얼마 줄게, 이런 거다."
"허!"
잼이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돈 그거 준다고 사람들이 애를 낳냐, 사는 게 편해져야 애를 낳지, 어쩌고 저쩌고. 그런데 이거 열두 살짜리가 하는 말 맞지? 점점 목소리가 커지더니 인생을 운운한다.
"부모가 되는 거랑 아닌 거랑은 인생이 달라지는 건데 돈 준다고 애를 낳아?"
이거 내 대사 아니지. 부모가 되는 거랑 아닌 거랑 인생 다른 거 너 왜 아는데. 좀 전까지 극대노하던 잼이가 갑자기 대화 방향을 틀었다.
"난 애를 키워야 한다면 낳는 거 보단 입양하는 게 나은 거 같아."
이 문장은 삼십 년 전 내가 했던 문장이다. 다들 어릴 때 하는 생각인 건지 아님 유전에 꽂힌 내 생각대로 나를 닮아서인지 어쩜 저리, 이런 생각을 하며 쉬지 않고 조잘대는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맞다, 그러고 보니 쟤 꼬맹이 때 내가 지어준 별명이 쫑알이었지. 여전한 우리 쫑알이는 오늘도 쫑알쫑알거리는구나.
"그런데 왜 입양아를 왕따 시키는 거야?"
왕따에 대해 분노를 시작하나 싶더니만 애를 낳고 버리는 사람들 이야기를 시작했다.
왜 애를 낳고 버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가 알까? 나도 정말 모르겠는 대화 주제지만 성심껏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말을 꺼냈다. 두려움 때문에 어디에 손도 내밀지 못하고 혼자 출산하는 미성년자 엄마들 말이다. 임신 중단을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주저하다가 그 시기를 놓칠 수도 있고, 병원에 같이 갈 보호자도 돈도 없어서일 수도 있다고.
"왜 엄마한테 말 안 해?"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잼이는 이 부분에서 막힌다. 왜 엄마에게 말을 하지 않고 혼자 힘들어할까. 나도 미성년자 관련한 숱한 기사를 읽으며 했던 생각이다. 왜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주변에 그렇게 어른이 하나도 없었을까.
"다들 엄마와의 관계가 우리 같지는 않으니까. 엄마에게 말하는 게 제일 공포일 수도 있어. 그리고 엄마가 없을 수도 있고."
아직은 엄마에게 말할 수 없는 게 무언지 알 수 없는 나이라서 더 이런 이야기에서 막히는 걸 거다. 잼이도 좀 더 나이를 먹고 엄마와 선을 긋게 되면 어느 정도는 그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겠지. 하지만 잼이를 키우면서 그런 기사들을 읽으면서 가장 내가 두려운 건 그거다. 잼이가 심각한 문제 앞에 서게 됐을 때 엄마에게 말하지 않는 것. 그래서 잼이가 어릴 때부터 종종 말하곤 했다.
"네가 어떤 나쁜 일에 얽히게 되었을 때 그게 네 잘못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해도 엄마에게 꼭 이야기해 줘. 사람은 언제든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을 수 있어. 그런 일이 생기면 꼭 이야기해 줘. 그러라고 엄마 아빠가 있는 거니까, 알았지?"
와닿지도 않을 말을 혼자 심각해져서 붙들곤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니 요샌 좀 쉬었네. 이따 잼이 잠들기 전에 또 이야기해야겠다. 분명 이 뜬금없는 이야기에 '이 엄마 또 왜 이래?' 하는 표정을 짓겠지.
우리 쫑알이, 잼이는 말이 끝나지 않지. 미성년자 아닌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그러게? 나도 도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이야기들-키울 수 없는 상황들 때문에 포기하는- 외에도 이해불가한 이유로 아이를 버리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잼에게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까. 그냥 이렇게 말해주는 수밖에.
"생각 보다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아. 엄마는 살면서 그런 사람 몇 밖에 보지 못했는데... 그런데 세상에 많대."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 많다. 잼에겐 절대우위로 아는 게 많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아는 게 많더라도 설명할 수 없는 게 많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나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좁은 세상 속에서 끼리끼리만을 보며 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나마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난 통로가 잼이를 키우면서 만난 아이엄마들 정도랄까. 그 외엔 비슷한 수준의 대학교를 나와서 비슷한 수준의 직장 생활을 하고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서 이게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나도 중년이니까 꽤 세상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잼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하면서 등장하는 사람들은 내가 모르는 세상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기사나 영화, 드라마, 책에서 봐왔던 실재하지만 내 상상 속에 있는 것만 같은, 그러나 분명 있는 사람들이다.
갑자기 방향을 전혀 다른 쪽으로 트는 잼이. 잼이 뇌 속 연상작용은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잼이의 연상작용을 따라 나도 생각을 멈추고 따라간다.
"엄마, 그런데 투표는 왜 안 하는 거야? 투표 안 하면 불법이잖아."
"응? 불법 아니야."
"어엉? 왜? 왜 불법이 아니야?"
투표 안 하면 불법. 신박한데? 물음표를 잔뜩 달고 있는 잼이는 놔두고 나 혼자 상상의 나래를 시작했다. 투표 안 하면 불법인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 사는, 투표라는 걸 한 번도 해본 적도, 해볼 생각도 안 해본 사람들이 투표를 하지 않으면 불법이라는 세상을 만나면 어떻게 반응할까. 각자의 생각에 바빠져 그날의 대화 핑퐁은 종료되었다.
잼 : 오늘도 주말 내내 놀다 일요일 밤에 숙제 초치기하느라 바쁜 초등 고학년
엄마 : 잼과 띠동갑.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띠동갑에서 한 바퀴 더 구른 나이에 잼을 낳았지만 잼과의 수준 차이는 한 바퀴를 빼야 한다. 잼과 같은 병을 앓고 있다. 월요병.
사진: Unsplash의Kai Pil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