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회사 그만둘까?"
잼과 끌어안고 뒹굴뒹굴거리다가 불쑥 이야기를 꺼냈다. 툭 치면 나오는 고장 난 자판기처럼 '그만둘까.'를 혼잣말로 시도 때도 없이 해대던 때라 그랬던 거 같다.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아이에게 뱉어버렸다. 누구나 입사 첫날부터 꿈꾸게 되는 퇴사가 요즘따라 더 마려웠다.
"왜?"
"그냥, 재미없어서."
내 말에 팔에 안겨있던 잼이 몸을 일으켜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재미없다고 그만둘 수 있어?"
그런 일이 정말 가능하다니. 순진한 얼굴에 의아함을 한껏 담고 나를 바라보는 잼의 눈빛에 찔끔했다. 내가 실언한 건가. 재미없다고 그만두는 게 회사일 수 있나.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건가. 이런 자기반성은 둘째치고 엄마가 고작 '재미없다'는 이유로 일을 '포기'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건 아닌가 싶었다. 내 진짜 마음은 어떻든 우선 교육상 일보후퇴를 해야겠다 싶어 그냥 해본 소리라고 얼버무렸다.
이렇게 잼이 때문에 회사도 그만 못 둔다고 자조 섞인 투덜거림을 지인에게 했더니 지인이 그런다. 당신 인생인데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그런다고 그만 못 둘 게 뭐냐고. 어라? 그러네? 듣고 보니 이 말도 맞다 싶었다. 나는 종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갈대 같은 인간인 건지, 네 말이 맞다, 네 말도 맞다 해주는 황희 정승의 정신을 이은 인간인 건지 모르겠다. 같은 이야기에 그러니까 그만두면 안 된다고 하는 동료 말에도 그 말이 맞다 맞장구쳤으니 말이다.
재미없다고 그만둘 수 없는, 혹은 그만두면 안 되는 일들에 대해 생각해 봤다. 잼이의 공부, 그리고 남편의 회사일. 그러면 나는? 나는 왜 회사를 다니는 걸까.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 근원적인 것부터 고민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다른 글에서 쓴 것처럼 그냥, 얼결이었다. 그냥 한 번 이력서를 써 보았고, 얼결에 면접을 보았고, 얼결에 첫 출근을 했고, 이렇게 그냥 어영부영 회사를 다닌 지 벌써 6개월이 되었다.
회사를 다니는 순기능들이 있다. 돈을 번다는 만족감, 일을 해내는 것에서 느끼는 충족감, 자기 효능감, 가족과 부딪히는 시간이 줄어드는 데에서 오는 관계의 원활함 등등. 그런데도 입에 붙어버린 이 퇴사에 대한 욕구는 무엇이란 말인가.
비단 나뿐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료들과 "퇴사하십시오."나 "퇴사하겠습니다."를 서로 유행어처럼 하는 걸 보면 말이다. 내기라도 할 듯이 누가 제일 먼저 그만둘까 점쳐보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게 참 우습고도 슬프다. 그렇다고 이 글에서 굳이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고 구구절절하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말하고 싶진 않다. 그냥 그만두는 사람이 많았던 전적이 있는 업무라는 것,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되겠지.
하아, 갑자기 우울해졌다. 잼이의 뼈 때리는 말에 띵 한 대 맞은 것 같은 그 느낌을 무언가 즐겁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쓰다 보니 한탄인 것 같은 노잼 글이라 우울한데 더군다나 지금은 일요일 밤이 아닌가. 출근까지 12시간도 남지 않았다! 이러니 우울해질 수밖에.
처음부터 이 회사를 오래 다니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얼마 전 만났던 친구가 벌써 그 회사를 다닌 지 십 년이 되었다고 했다. 그래, 잼이 아기일 때 입사한다며 지금의 나처럼 오래 다닐 생각 아니라고 했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니. 같은 회사를 계속 오래 다니는 자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그 녹록지 않음에 대해 이야기 들었을 때 나도 나중에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깐, 아주 잠깐. 그 이야기를 하는 친구가 좀 멋있어 보여서 잠깐, 아주 잠깐.
싫어도 하는 거, 중요하다. 한편으론 싫어도 무조건 참지 않고 거부하고 그만두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참을 사안인지 더 참으면 안 될 사안인지 그걸 판단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일을 그만두는 시점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동안의 나는 어떤 시점에 일을 그만두었나. 어떤 시점에 그만두어야 나 스스로도, 잼이에게도 납득이 될까. 웃으면서 퇴사할 날을 상상해 본다. 그날이 그리 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제 6개월 차인 주제에 바라본다. 누구나 마음속에 퇴사 하나씩은 있는 거잖아요.
잼 : 주말 내내 놀다 일요일 밤이 되면 숙제 초치기하는 초등 고학년
엄마 : 잼과 띠동갑.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띠동갑에서 한 바퀴 더 구른 나이에 잼을 낳았지만 잼과의 수준 차이는 한 바퀴를 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