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말로 'K-장녀'의 표본이다. 동생이 밑으로 셋이나 있고, 아버지 식당이 잘 안 되면서부터 가장 역할을 했으니 장녀의 기질은 더 짙어졌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느니 손해를 좀 보는 게 마음이 편하다. 남들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인데, 힘든 건 잘 내색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인생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면, 기가 막히게 나를 응원해 주는 손길들이 있었다.
1. 뜻밖의 기프티콘
날씨가 쌀쌀해지니까 마음도 싱숭생숭하다. 작년 가을엔 할머니 할아버지 건강 걱정에 우울했는데, 요즘은 한 살 더 먹는 내 상황에 고민이 많다. 그러다 친하게 지내는 언니가 대뜸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왔다. "날씨가 추워졌어요. 따뜻한 커피 한 잔 하세요!" 커피 한 잔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로부터 며칠 후 생리통으로 고생을 했다. 진통제를 먹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기프티콘을 연달아 2개를 받았다. 하나는 동생이 보내준 핫팩이었고, 하나는 15년 지기 친구가 보내준 필로우 미스트였다.
생일도 아닌데 기프티콘을 계속 받고 있는 요즘이다. 기분이 이상하면서도 좋다. '혹시 누가 나 힘들다고 어디 써붙였나?' 싶기도 하다. 어쩌면 '35년 인생 뭐 하면서 살았지?' 자책하던 나에게 답을 준 것만 같았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았구나.' 나도 머릿속에 누군가 떠오른다면, 주저하지 말고 연락을 건네봐야겠다 싶었다. 내가 보내는 사소한 연락이 누군가에겐 큰 위로가 될 수 있으니까.
2. 2023년 최고의 선물
2022년 연말이었다. 회사 회식을 포함해 갖가지 송년 모임에 지쳐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적으로 한계가 오는데 모든 모임에 참석하는 게 맞는지 의문도 들었고, 정작 내 주변 사람들은 못 챙기는 것만 같은 아쉬움도 있었다. 내 기분과 감정을 숨기고 하하호호 시간을 보내는 것도, 모임 장소를 찾아 예약을 챙기는 일도 '현타'가 왔다. 2023년 목표 중 하나를 '인간관계 디톡스'라고 세울 정도였다. 그렇게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퇴근을 했는데, 집 앞에 택배 하나가 와 있었다. 친하게 지내는 동기가 보낸 새해 선물이었다. 예쁜 글씨로 적은 손 편지도 함께 있었다. 편지지 한 장을 가득 채운 모든 말들이 소중했는데, 특히나 마음에 꽂힌 문장은 이렇다.
"언니가 해주는 예쁘고 다정한 말들이 항상 감동이고, 내 원동력이야. 우리를 신경 써주는 그 큰 마음이 항상 소중하고 고마워. 나도 언니처럼 사려 깊은 사람이 되어볼게!"
관계에 지쳐 차가워진 마음이 금세 따뜻해졌다. 그래서 2023년 목표를 수정했다. '주변 사람들 더 잘 챙기기.'
3. 날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들
고등학교 3학년 때 수능 시험을 보러 가는 날이었다. 운이 좋게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 학교에서 시험을 보게 됐다. 아침 일찍 시험 준비를 해서 부랴부랴 나왔는데, 시험장 앞에 교회 분들이 나와계셨다. "멀리도 아니고 이 앞에서 시험 보는데, 기도는 해주고 가야지!" 나에겐 너무 따뜻한 기억이었다.
엄마는 늘 우리 네 남매를 위해 기도하신다. 하루는 엄마가 교회 모임에서 기도제목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네 남매 이름을 줄줄이 말하기가 뭐해서 셋째와 넷째를 위한 기도만 나눴다고 한다. 그때 엄마 옆에 계시던 권사님께서 나를 언급하며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해 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능 때 기도해 주시던 분들 중 한 명이었다. 그 말을 듣고 눈물이 고였다. 15년째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이 있구나.
어쩌면 내가 잘못 살고 있을 때 바른 길로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우울감에 빠지다가도 다시 기운 차려볼 수 있는 것도, 내 주변 사람들의 기도 덕분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