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벌어지는 일

외면했던 정답, 그 끝에 남은 것

by 왼손별
정답을 알 수 없는 인생이다.
이직에 실패하고, 연애가 안 풀리고, 인생이 꼬이기만 할 때 우리는 늘 '이유'를 궁금해한다.
그런데 정답지를 마주하는 게 과연 좋은 걸까?


"여사친(여자 사람 친구)과 친하게 지내는 거, 어떻게 생각해?"

고깃집에서 저녁을 먹던 J가 나에게 물었다.

J와 사귄 지 한 달쯤 됐을 때였다.


J와는 소개팅으로 만났다. 나는 그의 어리숙한 표현이 좋았다. J는 나를 만나기 전 8년 동안 연애를 쉬었다고 했다. 혼자 지내는 게 익숙하기도 했고, 마음에 드는 상대도 없었고, 무엇보다 연애가 귀찮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런 자신을 다시금 연애하고 싶게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 고백이 너무나도 좋았다.


"나도 친하게 지내는 이성친구가 있긴 하지. 근데 만나는 사람 생기면, 둘이 따로 보지는 않아."

"다 같이 모임에서 만나는 건 괜찮아?"

"그런 것까지 내가 어떻게 뭐라 하겠어. 그냥 연인이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 관계를 유지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왜 물어봐?"


J는 친하게 지내는 이성친구가 있는데, 거의 동성과 다름없는 사이니, 그 친구를 따로 만나도 이해해 달라고 했다.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J와 만난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고, 이것 때문에 다투기 싫어 "알았다"라고 했다.


그런데 묘하게 신경이 쓰였다.

결국 그날 밤, 나는 J의 SNS를 열었다.

SNS를 둘러보니, 나의 촉은 한 사람에 향했다.

주기적으로 J 게시글에 댓글을 달며, 꽤 친해 보이는 A.

그렇게 A의 존재를 알게 됐다.




J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기에, 점심시간에 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나 오늘 친구랑 오마카세 먹으러 가!"

"점심에 오마카세를?"


그런데 정말이지 여자의 촉은 무섭다.

그날따라 J의 말투가 낯설었다.

결국 나는 손대지 말아야 할걸 건드렸다.

A의 SNS에 들어간 것.

그리고 A의 SNS에는 오마카세 게시글이 올라와 있었다.


"오빠, 오마카세 누구랑 먹었어?"

"저번에 말한 그 친구 있잖아. 동성만큼 편하게 지낸다는 그 친구."

"근데 왜 이야기를 안 해?"

"말했잖아. 친구랑 먹는다고."

"나 마음이 바뀌었어, 나 만나는 동안은 단둘이 보지 마!"

J와 나는 사귀고 나서 처음으로 크게 다퉜다.

그게 A 때문이라는 것도 자존심이 상했다.


그 이후로 J와 나는 두 달쯤 더 사귀었고, 다른 이유로 우린 헤어졌다.

헤어지고 나서도 괜스레 J와 A의 관계가 거슬렸다.

'나랑은 헤어졌어도, A와는 절대 만나지 말아라.'

그때는 그렇게 바랐던 것 같다.


그와 헤어지고 2주쯤 지났을 때, 지질하게도 나는 둘의 SNS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제발 아니길 바랐던 장면을 보게 됐다.

주말에 함께 서울 근교의 카페에 다녀온 것.

J는 카페의 전경을, A는 그곳에서 찍은 자신의 사진을 SNS에 올렸다.


심장이 뻥!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나는 왜 기어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추측이 사실로 판명되는 순간 나는 왜 무너졌을까?

아마도 마음 한편에 남겨둔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었을 거다.


인생은 정답을 알 수 없어 헤매는 날들이 많다.

대학생 때 서류 광탈을 연달아 맛볼 때도 그랬다.

'아니 제발, 떨어뜨리는 이유 좀 알려주면 안 되나?'


툭툭 의미 없는 연락을 던지면서 마음을 휘젓는 이성을 볼 때도, 이런 생각을 한다.

'얘는 왜 이러는 거야? 이렇게 찔러보는 이성이 몇 명이나 될까? 내가 쉽나?'


어쩌면 우리는 마음 깊숙이 정답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정답을 희망으로 덮어둔 채, 외면하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나를 지키기 위한 본능 같은 거랄까.

술 취한 밤, 끊긴 필름을 굳이 되돌려보지 않는 것처럼.


정답지를 펼칠 용기가 없다면, 물음표를 마침표로 바꾸기로 하자.

물음표를 많이 떠올리게 하는 건, 나의 것이 아닐 확률이 높다.

정답을 알았으니, 다음 장으로!



글을 쓰며 마음을 위로해 준 노래 한 곡을 남깁니다. BIG Naughty (서동현) -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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