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을 받아들이는 자세
*퀘스트 : 온라인 게임에서 다음 단계를 가기 위해 혹은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해 이용자가 수행해야 할 임무
나는 체육시간을 싫어했다. 체육시간엔 내 실력이 눈에 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른 과목은 선생님 말을 좀 이해 못 해도 자리에 앉아있으면 그만인데, 몸으로 하는 운동은 조금만 뒤처지면 티가 난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는 매주 수요일마다 수영을 했다. 이상하게 수영을 잘하려 할수록 물속에 더 깊이 가라앉았다. 그럴 때마다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물에 잠긴다는 사실보다 무서운 건, 뒤에서 다른 친구들이 나의 허둥대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거였다. 그때 나에게 수요일은, 지금의 월요일보다도 고통이었다. 결국 나는 수요일마다 학교를 안 가겠다고 선언했다. 수요일 아침이 되면,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엄마는 속이 타들어갔고, 아빠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두자고 했다. 수요일마다 결석을 하거나 지각을 했다. 참다못한 부모님은 결국 나를 수영 학원에 보냈다. 주 1회 수영 수업을 피하려다, 주 3회씩 수영을 하게 된 셈이다. 수영장에 갈 때마다 나는 엉엉 울었고, 울다 지친 나머지 수영장에 적응하는 길을 선택했다.
어른이 된 나의 취미는 수영이다. 물속에서 힘을 빼는 법을 배우니 자유를 얻었다. 물을 가르면서 헤엄치는 기분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탈 때의 쾌감과 비슷하다. 팔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이다 보니, 수영을 하고 나면 몸이 가벼워진다. 게다가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을 땐 수영만 한 게 없다. 레인 한 바퀴를 도는 데 집중하다 보면, 머리에 가득 찬 걱정 고민이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수영장에 간다.
올초부터는 퇴근 후 수영 강습을 듣기 시작했다. 어릴 때 자유형까지만 배웠기 때문에 평영은 동작 하나하나를 새로 배워야 했다. 선생님이 꽤 열정적이셔서, 수업이 끝난 후에도 자세 잡는 법을 알려주셨다.
"선생님, 저 평영 한 번만 봐주세요."
"어릴 때 반장 많이 하셨죠?"
"네? 갑자기요?"
"자세가 빠른 시간에 엄청 좋아졌어요. 회원님은 모범생 스타일이네요."
칭찬을 받으니 수영 다니는 게 더 좋아졌다. 그리고 다음 달에 나는 중급반에 올라갔다.
중급반 첫날, 처음으로 오리발을 꼈다. 오리발을 끼면 수영할 때 속도가 붙어서 좋다고 하던데, 나한텐 최악이었다. 첫째 오리발을 끼니 물속에서 걷기가 어려웠다. 자유를 잃게 된 것. 둘째 발이 무거워져서 그런지, 다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체력의 한계가 느껴졌다. 초급반에서는 레인 한 바퀴를 돌고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중급반은 세 바퀴를 쉬지 않고 돌았다. 폐활량이 부족한 나는, 두 바퀴쯤에서 호흡이 가빠졌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자, 나는 결국 가장자리로 빠졌다. 뒤에 오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마지막 순번으로 완주했다.
'취미를 즐기는 것도 이렇게 힘들어야 해?' 별안간 수영한테 배신을 당했다. 마침 수업 첫날이기에 등록을 취소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넌 평생 초급 수영만 할래? 중급반에서는 꼴찌면서 초급반에서 에이스라고 자만하면서 살래?' 일단은 등록 취소를 보류하고 좀 더 다녀보기로 했다.
매일매일이 퀘스트지만 어쩌겠나. 나는 수영을 더 잘하고 싶은데, 다른 영법도 배우고 싶은데, 힘들다고 도망치는 초등학생이 아닌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내가 감내해야 할 고통이었다.
그런데 어디 수영뿐이겠나. 인생은 단계별로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신입사원 때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건 '선배에게 예쁨 받기'였다. 선배들이 원하는 걸 잘 파악해 냈고, 회사가 원하는 성과를 냈다. 그러면 직장은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연차가 쌓이니 내가 책임져야 할 일들이 생겼다. 언제까지 '예쁨만 받는 존재'일 수는 없었다. 내 것을 지키기 위해 가끔은 쓴소리도 해야 했으며,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어도 사과해야 할 때가 있었다. 후배들에게 업무를 지시하고, 가르치고, 잘 이끌어주는 것도 학습이 필요했다.
요즘은 퇴근하고 자격증 공부를 한다. 고3 때 수능 공부를 하면서 듣던 S.E.S의 '달리기'를 우연히 듣게 됐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힘들게 살아야 하나 울컥하기도 했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퀘스트가 또 남았을까.
그냥 편하게 살면 안 되나 싶다가도, 다음 단계로 성장하고 싶은 나의 욕구가 '아직은 편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니 조금 더 힘을 내보기로.
그런데 가장 어려운 미션은, 역시 ‘이상형 찾기’다.
혹시 저만 이렇게 레벨업이 더딘 건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