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금요일 밤의 결심

‘술꾼도시여자들’의 뒤늦은 반성문

by 왼손별
루틴을 바꾸자 삶이 달라졌다.
그리고 좋은 인연을 만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도 알게 됐다.


술을 좋아했다. 술자리가 좋았다.

낯가림이 많은 성격인데, 술을 마시면 사람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어서 좋았다.


신기한 건, 주변 사람들도 다 술을 좋아했다.

대학교 때 대외 활동을 하면, 다들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방송국과 언론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두 곳 모두 낮술이 익숙한 곳이다. 점심에 맥주를 시키는 게 이상하다는 걸 소개팅에서 상대와 대화하다 알게 됐다.

더 신기한 건,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들도 다 술을 좋아한다. "우리 고등학생 땐 주량 모르고 친구 한 거 아냐? 근데 어쩜 이렇게 다들 술을 잘 마셔?"라고 서로를 보며 놀라한다.

그래서 나는 정말 모든 사람들이 술을 즐기는 줄 알고 살았다.


1년 전부터 술을 줄이기로 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지출을 줄이고 싶었던 것. 술을 마시면 술자리에서 먹는 식비, 술 마시기 전 먹어야 하는 숙취해소제 값, 술 마시고 나서 해장에 들어가는 비용, 술자리가 길어지면 내야 하는 택시비까지 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둘째, 맑은 정신을 갖고 싶었던 것. 술을 그렇게 좋아했을 때도 나름의 원칙은 '슬플 때 술을 마시지 않는다'였다. 술 마시고 전 연인에게 연락하는 불상사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별 후에는 최대한 술자리를 지양했다. 작년부터는 진지한 생각이 필요한 날들이 많았기에, 술을 줄여 나갔다. 덕분에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술자리가 줄어들자, 내 시간이 많아졌다.

운동도 가고, 독서도 하고, 글도 쓰고, 자격증 공부도 하고, 때로는 넷플릭스도 보면서 내 시간을 채워갔다.

그런데 생산적인 일을 루틴으로 만들 때는 '강제성'이 필요했다. 그래서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내기를 시작했다.

'투두메이트(to do mate)'라는 어플을 깔아서, 일주일 계획을 적었다. 계획한 항목을 지키지 못할 때마다 5,000원씩 벌금을 내는 구조다. 일주일에 적어도 5개는 스스로를 성장하게 할 일을 적어야 했다.

처음엔 벌금 내는 게 아까워서 꾸역꾸역 해나가다, 나중엔 어플에 쌓인 나의 기록들이 뿌듯해서 계획한 것들을 실천했다.


'투 두 메이트'에 쌓인 기록


'투두메이트' 어플을 다른 친구들에게 알려줬더니, 같이 하고 싶다는 친구가 늘어났다. 그렇게 나의 술친구들은 '갓생'을 살기 시작했다.


재밌는 일이다. 만나면 술을 먹고 힘들었다는 둥 술자리에서 실수를 했다는 둥 후회를 늘어놓던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잘 나이들 수 있을지'를 논하고 있다.

친구 A는 최근 경제 공부를 시작했고, 친구 B는 체중을 많이 감량했다. 친구 C는 책을 읽고 좋았던 구절을 인스타그램에 기록하고 있다. 친구 D는 같이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도움이 되는 앱을 추천해 줬다.




시청자의 성향과 취향을 파악해 영상을 추천해 주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삶에서도 작동하고 있었다.

내 관심사가 바뀌니 사람들의 관계도 달라졌다.


그리고 이상형을 만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깨달았다.

충섭이를 만나고 싶으면, 내가 금명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

건실하고 생각이 반듯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내가 그런 사람이 있을 법한 자리에 가야 하는 일이었다.


금요일 밤 술자리의 유혹을 뿌리치고, 수영장에 갔다.

회식의 여파로 집에서 잠을 자고 싶다가도, 약속한 예배 자리에 갔다.

더운 날 맥주 한 잔을 걸치고 싶었지만, 자격증 책을 펼쳤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도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신기하게도, 원하는 인연을 만날 확률이 늘어나고 있다.


※참고. 술은 싫어하진 않습니다. 술을 마시고 자제력을 잃은 제 모습을 싫어할 뿐.



글을 쓰며 마음을 위로해 준 노래 한 곡을 남깁니다. 원필(데이식스) - '행운을 빌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