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도 마음도 멈췄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

by 왼손별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 라인홀트 니버, 《평온을 구하는 기도》


망했다. 글이 쓰이지 않는다.

브런치북 완결을 위해 정리해 둔 개요가 있었지만, 이번 주 발행 예정이었던 글은 한 문장도 쓰지 못했다.

어제 새벽까지 초안으로 적어둔 글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대충 다듬어 발행하려고 했지만, 그만뒀다.

글에서만큼은 최대한 솔직한 내 마음을 담고 싶어서다.

억지로 문장을 채워 발행하느니, 지금의 내 상태를 적어보기로 했다.

이 글은 ‘이상형 찾기’와는 거리가 멀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나'와는 가장 가까운 이야기다.


2025년 브런치북을 적기 위해 정리한 개요


나는 왜 글을 쓰지 못하게 됐을까?


#1. P와의 연락

P는 올해 내가 가장 마음을 많이 준 이성이다.

그런 P에게서 연락이 왔다.

주말 아침 P가 남겨둔 메시지를 보고 감사 기도를 했다.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기도까지 할 정도인가 싶지만, 그때의 감정은 그랬다.

그리고 메모장을 켜 이렇게 적었다.

카카오톡 메시지 창 상단에 그의 프로필 사진을 다시 보게 되어 감사하다고.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고.
'나만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어서 기쁘다' 딱 그 마음까지라고.

그런데 그와 두 달째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 별 의미 없는 연락들만.

정답지를 펼쳐 놓은 채, 오답만 골라 적는 반항아가 되어버렸다.


#2. 술자리 뒷담화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을 털어놓으며 남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뒷담화라는 게 흡인력이 좋다. 누군가를 욕하면서 술자리의 분위기는 달아올랐고, 함께 동조한 사람들은 대동단결됐다.

그런데 그 자리 이후 마음이 영 찝찝하다. 어딘가에 빚을 진 채 살아가는 기분이다.

'누군가를 비난하기보다 개인의 성장에 집중했다'던 과거의 내 글과도 대치된다.

나는 상황을 바꾸려 하기보다, 남을 탓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건 위로가 아니라 회피였다.


#3. 어긋난 계획

불과 몇 달 전에 적은 글 속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

가장 최근에 한 다짐들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모순적인 내 모습이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안 좋은 생각들로부터 벗어나고자 수영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야근과 약속으로 수영장에 가지 못하고 있다.

역시 인생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와중에 감사한 건, 글을 적다가 내 상태를 알게 됐다는 거다.

나는 지금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태였다. 계획한 글을 한 자도 적어갈 수 없었다.


'좀 멈춰 서 있어도 된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자기혐오의 감정은 꽤 위험했다.

퇴근 후 재잘대던 동생의 말에 한마디도 호응할 수 없었다.

아침에 과일을 먹으라고 챙겨주는 엄마에게 감사 인사가 나오지 않았다.

자칫 타인에게도 내 부정적인 감정을 전염시킬까 두려웠다.


잘 살아보고자 달려왔는데 왜 나는 또 이럴까.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한탄이 나올 때쯤, 한 유튜버분이 들려주셨던 기도문이 떠올랐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지금 나를 멈춰 서게 한 것들을 돌아본다.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무엇이고, 바꾸기 위해 용기 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멈췄지만 무너지지는 않기 위해 '쓰지 못하는 마음'을 글로 남겨본다.


이렇게나 성장이 더뎌서 이상형은 언제 찾을까 싶지만, 이 모습마저 '나'인 걸로.



글을 쓰며 마음을 위로해 준 노래 한 곡을 남깁니다. 이무진 - '청춘이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