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살이 돋아날 용기
원하는 것을 잃고 무너졌던 순간들.
하지만 그 끝에서, 삶은 조용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를 일으켜준 소중한 손길들이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늘 이뤄지지 않았다.
#1. 대학교 4학년, 취업을 준비할 때도 그랬다.
합격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지칠 때쯤이었나.
자격증이라도 따려고, 학교에서 저녁 늦게 시작하는 컴퓨터 자격증 수업을 신청했다.
혼자 밥을 먹고 수업을 들으러 가는데, 하늘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제가 그렇게 쓸모없는 존재인가요?'
그날 수업을 듣고 나오는데, 서류 합격 문자를 받았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도 합격 통보를 하나?' 마치 나에게 조금만 더 힘을 내보라고 하늘이 보내는 응원 같았다.
결국 그 기업은 최종 면접에서 나를 뽑지 않았지만, 그 합격 문자가 나를 다시금 일으켜 세웠다.
#2. 결혼을 앞두고 이별을 고하는 H에게 나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 결혼 안 해도 돼. 우리 헤어지지만 말자. 오빠를 원했던 거지, 결혼이 하고 싶었던 거 아니야. 그냥 옆에만 있어줘."
H는 내가 가장 힘든 시기에 찾아왔다.
아빠가 방관했던 일들을 책임져야 했기에, 평일에는 퇴근하고 아빠 치킨집으로 출근했다. 주말에는 아빠가 차린 카페에서 일을 했다.
이렇게 살다 연애는 언제 하나 싶을 때쯤 H를 만났다.
H는 내가 원하는 이상형 그 자체였다.
"나는 너에게 최고로 좋은 것만 줄게." H가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H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그는 일과 가족, 돈에 지쳐 있던 내게 찾아온 선물 같은 존재였다.
그가 없는 삶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간절히 바랐던 H도, 결국 나를 떠났다.
나는 그 상실을 품고, 아주 느린 속도로 삶을 살아냈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H에게 연락이 왔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얼마나 감사한 인생인가.
내가 그토록 재회하고 싶었던 전 연인에게 연락을 받는다는 게,
상대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를 생각했다는 게,
시간이 지나도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게,
좋은 모습만 간직한 채 헤어질 수 있다는 게,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간절히 원하던 것들은 결국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돌아왔다.
지금은 꽤 만족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고, H의 마음도 늦게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원하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는 않기로 했다.
무언가를 애타게 바라면, 그것이 채워질 때까지 빈자리가 너무 아프다.
마음을 다 쏟아붓고도 원하는 게 이뤄지지 않으면, 내가 소멸되는 기분이 든다.
올해 나의 가장 큰 목표는 '이상형 찾기'였다.
사랑을 찾기 위해 애쓰던 어느 날, 역설적으로 소개팅을 받지 않기로 했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힘들었다. '잘 되나?' 싶다가도 어긋나는 관계에 마음이 지쳤다.
대신 나를 정비하고 내가 성장하는 데 몰두했다.
그러다 보니 삶은 아주 조용히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친구들 모임이나 취미 활동에서 자연스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운이 좋은 삶 아닌가.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기가 막히게 나를 일으켜 세우는 손길들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감히, 새살을 피워낼 용기를 가져본다.
원하는 것을 곧장 얻지 못해도, 인생은 충분히 살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