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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은 Aug 24. 2021

노는 건 좋고, 낳는 건 싫어!

오늘의 장르 : 모노 드라마


소소하게 파란만장한 일상을 기록합니다.

장르가 매일 바뀌어요.

오늘의 장르 : 모노 드라마





 조금 외롭고, 약간 우울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이유는 딱 하나. 남편이 바쁘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는 날들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나였으면 몸이든 정신이든 어딘가 고장났을 텐데, 강인한 우리 남편은 여전히 평온하다. 가끔 힘들어 보일 때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럴 때도 보통 5분 이내로 극복해 낸다. "하쑤 이따!!!!"를 외치거나 "다 잘될 거다~~~? 구쩡(걱정) 마라~~~?" 하며 해맑게 웃어 보이거나. 아무튼 잠시도 나쁜 감정이 고여 있을 틈이 없다. '저 사람은 대체 어떻게 저런 어른이 됐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나도 모르게 가만히 보게 될 때가 많다. 대게는 부럽고, 어쩌다 한 번씩은 얄밉다. 괜히 상대적으로 내가 더 못난 사람이 되는 거 같아서.


 요즘도 그렇다. 일 폭탄을 맞은 건 남편인데, 정작 당사자는 털 끝 하나 다치지 않은 반면 옆에 있는 나는 사지가 다 잘려 나간 기분이다. 일상이 지루하고 쓸쓸하다. 그렇다고 남편이 눈 옆에 가림막을 설치한 경주마처럼 모니터 화면만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서 산책을 나가자거나 달달구리를 먹으러 가자거나- 수시로 나를 챙기는데, 그런데도 자꾸만 심통이 난다. 나도 남들처럼 휴가 가고 싶다고, 아니 나들이라도 가고 싶다고 칭얼거린다. 휴가... 갔다 왔으면서. 성수기는 싫다고 일찌감치 미리, 일주일씩이나 다녀왔으면서. "그건 너무 오래 전이잖아!!!!" 떼를 쓰고 있다.


 그냥 자꾸 놀고 싶다. 자꾸만 일상을 벗어나고 싶다. 매일 똑같은 글을 쓰고, 매일 똑같은 길을 운전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로 출근하는 게 지겹다. 내가 아무리 집순이라지만, 아무리 우리집이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화이트우드톤으로 잘 정돈돼 있다지만, 그래도 가끔은 다른 데 가서 자고 싶다. 창밖으로 초록이나 파랑을 만끽할 수 있는 곳. 빗소리를 가까이 들을 수 있는 곳. 집앞에 근사한 산책로가 있는 곳. 그런 곳에 가고 싶다. 지금보다 더 자주, 그런 낭만적인 외박을 즐기고 싶은데... 그게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남편이 바쁜 게 문제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내가... 남편 말고는 함께 놀 사람이 없다는 것. 원래도 인간관계가 좁은 편인데다가 그나마 가까운 친구들은 모두 가정을 꾸린지 오래다. 물론 우리도 가정은 가정이다만, 2인 가구와 3인 혹은 4인 가구는 차원이 좀 다른 것 같다. 아이의, 아이에 의한, 아이를 위한 일상. 그들의 삶은 너무도 촘촘해서 더이상 내가 끼어들 틈이 없다. 문득문득 '현재를 공유할 수 없는 관계의 한계'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그 생각의 끝은 늘 같은 고민으로 귀결된다. '나도... 아이를 낳아야 하나?'




 이게 인생의 흐름인 건가? 서른 중반에 아이 없는 기혼자로 산다는 건, 집단에 소속될 수 없는 돌연변이의 삶인가? 잘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낳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 너무 심심해서 잠깐,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을 해보긴 했다. '애가 있으면 덜 심심할까?' 찰나였지만 그렇게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질겁했다. 가끔 내가 심심하단 소리를 하면 부러워했던 친구의 표정이 떠올랐다.


 지금의 내가 남편이 바쁜 게 싫은 거랑, 아이를 낳은 내가 남편이 바쁜 게 싫은 건 차원이 다른 문제일 거다. 지금의 내가 원고를 쓰기 싫은 거랑, 아이를 낳은 내가 원고를 쓰기 싫은 것도... 괴로움의 농도가 다를 거다. 결코 쉬이 선택할 수 없는 문제. 결정하고 나면 되돌릴 수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겠지. 누군가는 그거면 된다고 했다. 다 살게 마련이라고, 상황에 맞춰서 다 살게 된다고. 그걸 모를 리가 있나? 나도 안다 그건. 다들 어찌 어찌 산다는 거. 모두가 각자의 궁여지책을 어떻게든 찾아낸다는 거. 나는 그게 두려운 거다. 매 순간 최선을 찾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한다는 게, 그게 무섭다. 내가 또 좀 성실해야지? 보나마나 그 최선을 위해 집착적으로 매달릴 텐데... 아... 생각만 해도 버겁다. 둘뿐인 가정에도 그런 최선이 없는 게 아니기에, 여기에 더 이상 무게를 더하고 싶지가 않다.


 조금 가볍게 살고 싶다는 게 그렇게 나쁜 걸까? 돌아보면 지난 30여 년 충분히 무거웠는데... 이제라도 나와 남편, 두 사람만 생각하며 살면 안 되는 건가? 대상이 없는데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는 요즘이다. 끝나지 않은 고민. 뭐든 혼자 알아서 빨리빨리 쉽게쉽게 잘 결정하던 내가, 아무래도... 인생 최대의 난제를 만난 것 같다. 어느 쪽으로든 결심 서겠지. 언젠가는.


 그 언젠가가 올 때까지! 누구... 나랑 놀 사람?


 없겠지. 그러니까 여보! 제발... 그만 바쁘고 나랑 놀자. 나 원래 혼자 놀기의 달인이었는데... 내 인생 홀로 걷는 길이었는데... 여보 만난 뒤로 혼자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이 됐잖아. 혼자서는 뭘 해도 재미가 없고 뭘 먹어도 맛이 없어. 옆에서 같이 감탄할 사람이 필요하단 말야. 얼른 끝내고, 나랑 같이 쳇바퀴 때려 부수자. 계속 제자리에서 도는 거 이제 좀 지겹고 멀미 나니까.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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