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신기한 꿈을 꾼다. 국민학교 1학년 때 반 아이들이 떼로 나오거나, 몇 학년 때인지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아무튼 우리 반이었으나 나와는 별로 친하지 않던 아이가 나오거나 하는 식의 꿈. 하늘을 날거나 공룡이 나오는 꿈도 꾸는 마당에 이깟 꿈이 뭐가 신기하냐 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생각도 못한 이들이 꿈에 나오고 꿈속에서 내가 그들의 이름을 부른다는 게 너무나 신기하다. 그렇게 꿈을 한 번 꾸고 나면 잊고 지낸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그런 걸 보면, 어쩌면 최면을 통한 치료도 이와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어제는 꿈이 아닌 현실에서 이런 일을 경험했다. 퇴근 후 선배와 매운 요리를 먹으러 갔는데, 음식 맛도 맛이지만 직원 하나가 어찌나 친절한지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선배와 둘이서 '저 언니 진짜 친절하다!'라고 몇 번씩이나 칭찬을 했고, 계산을 하러 나갈 때도 눈웃음으로 배웅하는 그녀 덕에 덩달아 웃음이 났다.
그런데, 선배가 계산을 하는 사이 갑자기 내 뒤로 스윽 다가오는 그녀! 내 귀에 대고 아주 작은 소리로 묻는다. "혹시... **초등학교?"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그 직원, 아니 내 동창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의 시간이었고, 나는 부지불식간에 이름 세 글자를 내뱉었다. 성까지 정확하게. 세상에.
초등학교 동창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만난 것도 신기했지만, 20년 만에 처음 만난 데다 그리 절친한 사이도 아니었던, 심지어 얼굴도 많이 변한 그 친구를 알아본 게 더 신기했다. 대체 인간의 뇌에는 얼마나 많은 정보가 저장돼 있는 걸까?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은 대관절 어디께에 남아 있다가 불쑥 튀어나온 걸까?
극장에서 두 번이나 봤던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생각난다. 거기서 보면 수시로 꺼내보는 기억과, 잊은 듯 살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기억이 보관되는 장소가 서로 다르다. 그리고 완전히 잊혀지는 기억이 버려지는 깊은 골짜기도 있다. 아마도 20년 만에 만난 동창의 이름은 골짜기에 던져지기 직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연애시대>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떠오른다.
'시간이라는 덧없음을 견디게 하는 것은 지난날의 기억들. 지금 이 시간도 지나고 나면 기억이 된다. 산다는 것은 기억을 만들어 가는 것.'
모든 순간이 결국은 기억이 된다는 것. 그게 바로 오늘이 소중하고 애틋한 이유일 게다. 그러니 오늘도 곱게 살아야겠다. 슈퍼컴퓨터 뺨치는 나의 뇌가 되도록 좋은 기억들을 간직할 수 있도록, 예쁜 날들을 만들어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