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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본 Nov 03. 2018

노이즈 캔슬링

소리의 취사선택

    B사의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사용하고 있다. 소음 차단 능력이 무척 괜찮은 편이다. 방 건너 룸메이트의 게임 소리도, 화장실 변기의 물 내려가는 소리도, 적축 키보드의 타건 소리도, 베란다 뒤의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도 모두 차음 시킨다. 양 귀를 감싸는 포근한 착용감이 좋고, 거추장스러운 선이 없다는 점도 좋고, 마우스 클릭 두세 번만으로도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내 방 안에서 작은 프라이버시를 가진 공간을 새로 만들어낸다는 감각도 좋다. 자동으로 설정해주는 음악 애플리케이션의 플레이리스트는 이미 오래전 나의 음악 취향을 완전히 파악했다. 헤드폰을 쓰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 편안함을 느낀다.


    양 귀에 얹어진 둥그런 장치는 묵묵히 밖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의 파형을 분석한다. 그와 상반되는 파형을 내뿜으며, 외부의 소리를 상쇄시킨다. 그렇게 음악에 집중하는 사이, 나는 룸메이트의 저녁 먹자라는 소리를 놓친다. 빨래가 다 되어 세탁물을 가져가라는 세탁기의 띠리링 거리는 볼멘소리를 놓친다. 타지에서 잘 지내냐 안부를 묻고 싶었던 부모님의 전화 벨소리를 놓친다. 창밖에 투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놓친다. 내 귀에는 아리아나 그란데의 시원시원한 목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오직 음악 소리에만 집중하며, 그 이외의 모든 소리들을 나는 무의식적으로 노이즈로 단정 짓는다.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시선이 응시하는 곳과 그렇지 않은 주변으로 나뉘어 저 있듯, 나는 단 하나의 소리만을 응시하려 집중한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곱고 다채로웠던 목소리와는 다르게, 오늘 내가 마주했던 노이즈들은 나를 피로하게 했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상사의 업무 지시, 식사 간 들어주어야만 했던 동료의 푸념, 회의 간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나와 큰 관련이 없는 업무 이야기, 그것 말고도 여러 노이즈들을 상대했고, 그 잡음들을 경청하려 노력했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어린 시절 문 틈을 통과하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두 귀를 양 손으로 막았던 경험처럼, 두 귀를 헤드폰으로 틀어막는 상상을 했다. 듣기 싫은 소리가 듣기 싫었다. 노이즈 캔슬링이 필요했다.


   우리는 우리의 청각 기관을 파고들어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노이즈들을 차단할 권리가 있다. 소리의 취사선택은 이기적인 선택이 아니다. "넌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사니?"라는 핀잔을 위한 쓸모없는 질문은 객관적인 질문이 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의 안티테제 답변이라고 할 수 있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기술을 애용할 필요가 있다. 상처를 주려는 말에 에너지와 감정을 쏟아붓는다면, 결국 지쳐 나가떨어지는 사람은 화자가 아닌 청자이기 때문이다.


    모든 소리들을 경청하려 귀를 쫑긋 세우지 말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면, 조용히 헤드폰을 집어 들자.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이 의심스러운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정원이든, 마음을 쿡쿡 찌르는 날 선 포크들이 기관총처럼 발사되는 불편한 전쟁터이든, 마음에 들지 않는 당신네들의 생각과 의견을 가끔 차단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당신네들의 생각은 우리와 틀릴 수 있으며, 우리의 귀는 그것들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우리의 고막은 우리의 눈만큼이나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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