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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본 Oct 30. 2018

카운슬러에게 느꼈던 설렘

자존감의 재확인

    누군가의 친절함을 호감으로 오인하는 경우는 흔히 있는 편이다. 조금 더 신경 써주는 듯한 말투와 함께 여러 긍정적인 비언어적 표현과 함께 ‘당신의 말을 집중해 경청하고 있습니다.’라는 기분 좋은 느낌은 화자로 하여금 감사함을 느끼게 한다. 이 감사함은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뒤섞여 ‘이 사람이 나에게 호감이 있나?’라는 어설픈 가능성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근래 상담사 한 분과 상담을 한 적이 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주 만족스러운 상담이었다. "지금도 잘 하고 계시니, 지금 그대로 이어나가셔도 괜찮아요. 이미 충분히 잘 하고 있으신걸요."라는 상담사의 말은, 지친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상담 말미에 책 한 권을 추천해 주었다. 꼭 읽겠다는 인사치레와 함께 인사했다. 며칠 뒤 추천받은 책을 읽었다. 비슷한 책을 추천해달라는 문자를 용기 내어 보냈다. "정말 읽어보실 줄은 몰랐어요!"로 시작되는 상담사의 답변에, 나는 사적인 감정들을 꾹꾹 눌러 숨겨가며 답장을 보냈다. 나의 일, 나의 스트레스, 나의 사람, 나의 감정 상태에 대해 이야기했고, 다시 좋은 위로를 받았다. "좋아하는 일에 용기 내 시도해 보세요. 글 잘 쓰시잖아요!"라는 말에 브런치에 작가로 지원했다. 며칠 후 브런치에서 답장이 왔다. 첫 글을 쓴 후, 내 글을 읽어 주길 바랬던 주변 사람들에게 작가 주소를 전송해 주었다. 그들 중에는, 그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의 도움으로 내 글에 대한 믿음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그녀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느낌표로 끝날 기대했던 경쾌한 답장은 오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그동안 정해진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과 외 업무를 계속해왔던 것이다. 나는 상담사이기 이전에 그녀의 일상을 존중하지 않았던 것이며, 공과 사의 영역을 뒤섞으려고 했던 문자 내용들 역시 그녀의 직업윤리를 존중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그녀가 추천해 준 책을 읽었던 것이 나의 선택이었듯이, 그녀가 내가 쓴 글을 읽지 않는 것 역시 그녀의 선택인 것이다. 내가 느낀 설렘은 무척이나 이기적이었던 것이다.


    답장을 보내지 않았던 그녀의 마지막 답장은 또 다른 비언어적 표현을 통한 마지막 상담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걸음마를 다 뗀 아이는 더 이상 어머니의 손을 붙잡지 않듯, 그녀의 마지막 답장은 이제 스스로 앞으로 걸어 나가라는 그녀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꿈보다 해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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