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의 높은 심리적 허들
아버지는 비행기 이야기만 꺼내면 간혹 눈물을 보이신다. 밖에서 일하다 창공을 시원스레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면 그는 슬픈 눈빛으로, 가늘게 눈을 뜬 채 비행기의 꼬리를 추적한다. 그 높이만큼 현실과 이상 사이의 먼 괴리감을 느끼며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채찍질한다. 더 높이 뛸 수 있음에도 유리병 안 코르크 마개 뚜껑을 두드리다 한계점을 강제로 스스로 설정한 벼룩처럼, 비행기라는 단어는 그로 하여금 그것과 평생 관련 없는 삶을 살아왔고, 살아갈 것임을 내포하고 있던 것이다.
여유로운 경제 사정은 아니지만, 사실 아버지께서는 비행기를 못 타는 것이 아니라 타지 않는 것이다. 싼 항공권을 구한다면 간혹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버스 요금보다 더 싼 항공권이 있다는 말씀을 드렸을 때도, 어머니께서 누가 어디를 비행기를 타고 다녀왔다더라,라고 말할 때도, 찰랑거리는 소주잔 뒤에 비치는 그의 입꼬리 모양은 도통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는 고독한 삶을 살았다. 직선거리로만 지구를 두 바퀴는 훨씬 넘게 달렸을 트럭을 벗 삼아, 거래처 사람을 만나고, 을의 처지에서 참고 살아가며 홀로 고된 일을 이어나갔다. 처자식을 먹여 살리려 모든 짐을 어깨 위에 쌓아나갔다. 여유가 없던 삶을 살아가며 여행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렸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린 채, 강산이 두어 번도 더 변했을 세상의 아름다움을 외면했다.
그에겐 공항을 비춰대는 뉴스 화면이 어색하다. 올해는 해외로 떠난 사람들이 전년 대비 몇 퍼센트 증가했다는 내용보다, 비행기를 바라보며 먹먹함을 느낄 그와 같은 처지를 지닌 소시민들의 울적함이 그려진다. 순교자처럼 자신을 희생해가며 스스로 비행기를 거부했던 그들의 삶에, 당신도 구름 속을 거닌 채, 조감도로 세상을 바라보며 아주 멋진 비행기를 탈 권리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감히 전달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