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족식
소위로 임관 후, 후반기 교육을 주관하는 학교에서 주말 외박 간 과제를 주었던 적이 있었다. 부모님의 발을 닦는 사진을 찍어서 담당 교관에게 제출하라는 내용이었다. 아무리 군대가 보여주기 식 문화가 심하다고 하지만, 어버이날을 앞둔 주말에 이렇게 억지 춘향처럼 낯부끄럽게 세족식을 해야 하나 싶었다. 게 중 몇몇은 교관에게 꼭 해야 합니까?라는 민심을 담은 질문을 던졌으나, 이것도 임무다. 라며 일갈했던 교관의 답변에 우리는 납득했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따뜻한 온수를 세숫대야에 틀어놓았다.
몇 년 전, SNS에서 화제가 되었던 사진들이 있었다. 한 애묘가가 기르던 고양이의 목걸이에 일정 주기로 촬영이 되는 자그마한 카메라를 달아, 고양이의 시야에서 바라본 세상들을 찍었던 사진이다. 사진들을 본 사람들은 사람의 눈높이가 아닌, 낮은 고양이의 눈높이로 바라본 다른 세상의 관점에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고 표현했다. 부모님의 발을 닦아 드리기 전 문득 이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눈을 감고 부모님의 시야가 아닌, 부모님의 신발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서 상상하기 시작했다.
백조가 수면 위에 떠 있기 위해 쉼 없이 발을 구르는 것처럼,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푸르스름한 트럭으로 거래처를 돌아다니시며 쉼 없이 클러치와 액셀을 번갈아 밟아대는 아버지의 낡은 작업화, 그리고 반도체 공장에서 장화를 신다가 퇴근 후 빛바랜 에나멜 단화로 신발을 갈아 신고 시장통에 나가 야채가게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한숨 쉬고 정육점으로 걸어가는 어머니의 신발.
'그 사람이 신은 신발을 보면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다.'라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나온 한 대사가 뒤이어 떠오르며, 고개를 돌려 현관 앞에 어슷하게 놓인 신발들을 바라보았다. 장교로 임관한 우리 아들, 좋은 신발 신고 다니라며 어머니가 사 주신 유명 브랜드의 운동화는 니케의 날개를 양 옆으로 뻗치며 으스대고 있었다. 그 옆에는 광택을 반쯤 잃어버린 어머니의 보랏빛 단화와, 기름때가 신발 밑창 주변에 덕지덕지 낀 아버지의 작업화가 놓여 있었다. 나는 언제 한 번이라도 부모님의 신발과 그 발의 흔적에 대해서 진지하게 사유해 보았던 적이 있었는가, 그 기나긴 걸음걸음과 함께 동행했던 부모님의 발을 제대로 마주했던 적은 있었던가.
물에 담긴 부모님의 발을 꺼내 복숭아뼈부터, 발등의 언덕을 타고 내려가, 가지처럼 뻗치어진 발가락들을 정성껏 닦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져 보는 부모님의 발, 그 발보다 작게 태어났던 내가, 내가 자라온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쉼 없이 달려왔을 부모님의 거친 발을 닦고 있었다. 이렇게나 많을 정도로 굳은살들이 발에 박혀 있던 줄도 몰랐고, 구불구불한 주름들이 발가락 여기저기에 새겨져 있는 줄도 몰랐다. 물이 미지근해질 즈음, 낯부끄러운 감정은 어느새 진심이 되어 뭉클한 감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무뚝뚝하신 아버지께서, 왠지 그 날 저녁식사만큼은 평소보다 더 많은 웃음을 지으셨던 것 같다. 어머니께선 영원한 내 새끼인 나에게 더 어른스러워졌다 말했다. 계산은, 내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