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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총각 Sep 25. 2019

국내를 5개월이나 돌아다녔다고?

국내 배낭여행을 하게 된 이유

"국내를 5 돌아다녔다고?"


"응"


흔히 '배낭여행'이라고 하면, 유럽이나 남미 같은 해외 배낭여행을 떠올리지만, 나는 국내로 떠났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2016년.


나는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었다. 그곳에서 약 1년간 일을 했고, 워홀 생활을 하며 모은 돈으로 북, 중미를 돌아다니며 약 5개월간 배낭여행을 했다. 나는 음식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캐나다 워홀을 하는 동안, 그리고 여행을 하는 동안, 다양하고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려 했다.


한국에서 맛보지 못했던 다양한 음식들은 모두 색다르고 맛있었다. 하지만, 외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지날수록(비록 다 합쳐봐야 1년 6개월이지만)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갔고, 한식의 다양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오히려, 외국에 있다 보니 한국 음식에 더 관심이 가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작지만, 각 지역마다 다양한 음식이 있고, 각 지방의 특산물이 뚜렷하게 존재하는 국가다. 한국에 있을 땐 몰랐는데, 음식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러한 사실이 참으로 축복받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지역 음식'을 테마로 국내 배낭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진짜 대한민국의 맛'을 알아보고 싶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정말 제대로 된 지역 음식을 먹어볼 수 있을까?'라고 고민했던 나는, 그 해답을 '시골의 집밥'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골의 집밥은 할머니들의 손맛과 각 고장의 특산물을 이용한 색다른 음식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시골의 집밥을 얻어 먹느냐?'였다. 내가 '한국인의 밥상'에 나오는 최불암 선생님도 아니고, 어떻게 모르는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을 수 있을까?



그때 마침 떠오른 생각이 '시골의 일손 부족'이었다.


'시골엔 항상 일손이 부족하니 농사일이나 집안일을 도와드린다면, 밥 한 끼 정도는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직접 농사일을 해보면 식재료 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고, 거기에 잠자리까지 제공받는다면? 이거 큰돈 없이도 전국을 다니며 여행할 수 있겠는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이런 단순한 생각으로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각 지방의 특산물을 조사하고, 그 특산물의 수확시기에 맞춰 대강의 여행 루트를 짜보았다.


여행 준비는 순조로웠지만, 여행을 계획하면 계획할수록 '이런 방식의 여행이 정말 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자기 집으로 반겨주는 곳이 얼마나 될지가 가장 큰 의문이었다.




2018년 5월 14일. 여행은 시작되었고. 호기로웠던 출발과는 다르게, 시작부터 삐걱댔다. 사람들은 나큰 배낭을 메고 시골을 돌아다니는 청년을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차가운 말투로 외면하기 일쑤였다. 

무작정 찾아간 마을회관에서는 나를 폭탄 넘기기 하듯 다른 곳에 넘기기 바빴고, 해가 질 때까지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해 밖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청하기도 했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반응이었다. 요즘처럼 흉흉한 세상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마음 편히 자기 집으로 초대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계속된 거절에 지친 나는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점점 노하우가 생겨 시청이나 군청에 연락을 하여 도움을 받기도했다. 그곳 역시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알맞은 지역의 동사무소를 추천해주셨고, 추천을 받은 동사무소에서는 적당한 농가나 이장님을 소개시켜주었다.


그렇게 한 군데의 농가를 구하기 위해, 하루에 20통이 넘는 전화를 했었고, 계속된 거절 끝에 '한번 와보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면, 이 여행을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나는 수상한 청년을 믿고 자신의 집 혹은 자신의 마을로 초대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그만큼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떠한 일이든 가리지 않고 나섰다.


나의 진심이 통했는지 그분들은 나를 '수상한 청년'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청년'으로 바라봐주셨고, 나를 아들 혹은 조카처럼 편하게 대해주셨다. 또한, 내가 다음에 찾아갈 농가를 소개해주시거나, 각종 sns를 통해 나를 홍보해주시기도 하셨다.


이렇게 감사한 분들 덕분에 내가 찾아간 농가에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고, 다음에 찾아갈 농가를 보다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농사일은 힘들다


일할 수 있는 농가를 찾는 것이 여행의 가장 큰 어려움이었지만, 난생처음 하는 농사일 역시 만만치 않았다. 모내기 철에는 정신없이 모판을 나르기도 했고, 뜨거운 햇빛 아래 하루 종일 허리를 구부려 잡초를 뽑기도 했다. 과수농가에서는 커다란 사다리에 올라 과일에 봉지를 씌우는 일을 하기도 했고, 생전 처음 써보는 농기계를 다뤄 직접 밭을 갈궈보기도 했다.


농사일은 대부분 육체적 노동이 많은 작업이어서, 일이 끝나면 바로 잠자리에 곯아떨어졌고, 아침 잠이 많은 내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매일 새벽같이 일찍 일어나는 것은 고통 그 자체였다. 하지만, 모든 농부님들은 매일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묵묵히 이겨내고 계셨다.


"안 힘드세요?"


"왜 안 힘들어, 힘들어도 해야지"



식사는 언제 하세요?


사실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던 '지역 밥상'도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미 지역 음식이라는 것이 많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농가에서는 일손이 바빠 오히려 밥을 더 못 챙겨 먹고 있었다. 흔히 '대중없다'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셨는데, 밥시간을 정해놓고 드시는 것이 아니라, 하던 일이 마무리되면 그제서야 밥을 챙겨 드시곤 했다. 하지만, 내가 방문했다는 이유로 밥시간을 제대로 챙겨주시려고 하셨고, 괜히 나 때문에 이분들의 생활 패턴이 망가지는 것 같아 죄송스러웠다. 나의 경험을 위해 남들에게 민폐만 끼치고 다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농가에서 지내는 동안 작은일이라도 더 많은 일손을 도와드리려 노력했다.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 거야?


여행 내내 나를 따라다니던 질문이었다. 하고 싶은 걸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는, 취업 전 마지막으로 마음이 두근거리는 일을 맘 놓고 해보고 싶었다. 또한,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기 시작하면, 이렇게 장기간 여행할 수 있는 기회는 오지 않을 것 같았기에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을 다하며 살 수는 없지만, 이러한 여행은 젊을 때 하지 못하고 나이를 먹게된다면, 정말 많이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단,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라는 나의 인생 모토대로, 나는 이 여행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여행을 마친 지금의 나는 더이상 '아 이런 여행은 꼭 해보고 싶었는데...'라고 후회 하지 않는다.


너는 지금 시간낭비 중이야


간혹 어떤 어르신들은 내가 하는 여행이 시간낭비라며, 빨리 집으로 돌아가 취직이나 하라는 꾸중을 하기도 하셨다. 이 당시 내 나이는 28살이었고, 주변 내 친구들 대부분은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하거나 취업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취업도 안 하고 배낭여행을 하는 내가 한심해 보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꾀죄죄한 모습으로, 시골을 다니며 여행을 하고 있으니 더욱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투자한 1년이라는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 해 동안 여행을 준비하고 실행하며,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었고, 내가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분들과의 만남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더 넓게 만들어 주었다.


비록 애초에 내가 원하던 '지역 밥상'에 대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농사와 시골의 문제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이는 나의 생활 습관뿐만 아니라, 나의 진로를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여행이 끝나고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지만, 농사나 시골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고, 나는 여러 고민 끝에 친환경 농산물과 관련된 곳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얼굴도 모르는 수상한 청년을 집으로 초대해주셨던 모든 분들, 용기를 응원한다며 밥을 사주시겠다던 분들, 다닐 때 차비하라며 큰돈을 주셨던 분들 등. 다시 한번 무식하고 무모한 청년을 응원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작년 한 해 동안 저에게 도움을 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05.14 - 10.11

국내 배낭여행을 마치고


@도시에서온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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