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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총각 Nov 22. 2018

그냥 내다 버렸어요

친환경 농산물?

5월인데 벌써부터 이렇게 덥다니...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아침부터 풀을 뽑기 시작했다.


'이놈의 풀은 왜 이렇게 큰 거야?'


파주의 한 산머루 농원. 이곳 역시 제초제와 농약을 쓰지않고, 산머루를 재배하는 곳이었다. 따라서, 이곳에서 내가 해야할 일은 잡초 뽑기. 올해 77세이신 아버님은 내가 큰 풀을 뽑고 있는 동안 무거운 예초기를 돌리셨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라면 알 것이다. 땡볕에서 하루 종일 예초기를 돌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터를 등에 짊어진 아버님의 등은 땀으로 흥건하게 적셔저 있었고, 모자를 쓴 이마에서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나 역시도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예초기를 이용한 제초작업

제초 작업이 끝나자 아버님은 창고에서 투명한 비닐과 검은색 차광망을 가지고 나오셨다. 그리고는 나에게 비닐과 차광망을 땅에 놓으며 말씀하셨다.


"이제 이걸 땅에 깔아야 해요"


"아버님, 이 작업은 왜 하는 거예요?"


"땅에 비닐과 차광망을 덮어서 열을 가두면, 잡초가 뜨거워서 자라지 못해요"


10m가 훌쩍 넘는 비닐과 차광망을 옮길 때마다 이리저리 먼지가 날렸다. 안 그래도 뜨거운 햇빛에 숨이 막혀가는데, 먼지까지 날리니 숨쉬기가 더 힘들었다. 


차광망 작업이 완료된 과수원



"잠시 쉬었다 해요"


"네"


아버님과 나는 잠시 작업을 중단하고 그늘 밑으로 들어가 휴식을 하기로 했다. 그늘에 자리를 잡은 아버님은 나에게 초코파이 하나와 두유 하나를 건네셨다.


"날이 더워서 힘들죠?"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제초제를 안 쓰니까 할 일이 정말 많네요"


"그럼요. 제초제를 쓰면 일하기는 훨씬 편한데... 제초제를 안쓰니까 풀도 뽑아야 하고, 풀이 안 자라게 비닐이랑 차광망도 깔아줘야 하고. 농약이랑 퇴비도 친환경으로 만들어 쓰기 때문에 할 일이 항상 많은 편이죠"


"농약이랑 퇴비를 만드신다구요?"


잠깐의 꿀 같은 휴식이 끝나고, 아버님은 직접 만드신 친환경 농약과 퇴비를 보여주셨다. 여러 재료를 섞어서 만드는 친환경 농약과 퇴비는 아버님이 인터넷 강의까지 들으시면서 공부한 결과물이라고 하셨다.


"이걸 만드는데 10년이 걸렸어요"


77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책을 물론 컴퓨터를 이용해 공부하신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친환경이라는 게 정말 어렵네요. 그런데 어떻게 친환경 농업을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사실 나는 친환경이라는 단어를 몰랐어요. 그냥 내가 배운 대로 했던 건데, 그게 요즘 말하는 친환경이더라고. 그래서 농약이나 제초제 같은걸 사용할 생각을 안 했지. 근데 이제는 밖에서 파는 농약이나 제초제를 쓰면 일이 훨씬 쉬워진다는 걸 알아도, 내가 먹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하게 되더라고. 근데 사람들은 잘 몰라요. 별로 관심이 없는 거 같아. 그리고 특히 공판장에선 친환경이 쓸모가 없어요."


"쓸모없다는게 무슨 말씀이세요?"


"한 번은 공판장에 가져갔는데, 그 해에는 머루 값이 많이 떨어진 데다가 친환경은 대우도 안 해주더라고, 비싼데다가 모양도 이상하니까 사람들이 잘 안 사간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준다는 가격이 재료비도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도로 집으로 가져왔어요."


"그럼 그 머루는 다 어떻게 하셨어요?"


"머루는 보관하기가 쉽지 않아서 금방 물러져요. 집에 가져와서 물러진 머루를 보니까 너무 화가 나는 거야. 그래서 홧김에 그냥 다 내다 버렸어요."


이렇게 힘들게 수확한 머루를 버리셨다니... 얼마나 속상하셨으면 그런 결정을 하셨을까. 그동안 과일의 겉모습만 보고 구매했던 나를 반성하게된 시간이었다.



2018.05.23-05.25

파주의 한 머루농원에서


@도시에서온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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