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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Jul 08. 2024

남해의 덕후들이 만든 공간들

요가덕후, 한식덕후, 커피덕후, 서핑덕후, 책덕후, 굉장했어

남해에서 새벽부터 요가를 한다고 하니, 친구가 부러워했던 게 생각이 났다. 마침 바래길센터에서 요가를 가르쳐주시는 하루 선생님이 일요일에는 은모래해변에서 요가 수업을 하신대서, 친구와 함께 새벽요가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해변에서 요가를 한다기에 해변이 보이는 곳에서 요가를 하는 줄 알았더니 진짜로 파도가 치는 바다 바로 앞에서 선생님을 만났다.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요가 매트 다섯 개가 우리를 반겼다. 대학생 때부터 요가를 종종 배우러 다녔지만, 이렇게 야외에서 해보는 경험은 처음이다. 초반에 명상을 하다가 눈을 떠보니 파도가 눈앞에서 치고 있었고, 스트레칭을 한다고 하늘을 보니 진짜 하늘이 위에 있었다. 옆을 보면 천황산과 해운산이, 뒤를 보면 금산이 펼쳐졌다. 무엇보다 파도 소리가 정말 좋았다. 실내에서 할 때는 스피커로 듣던 소리가 실제로 들리니 이보다 더한 힐링은 없었다. 모래가 양팔에 묻는 것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동작을 따라 했다. 날이 흐리지만 비는 오지 않아 야외에서 오랜 시간 요가를 하기엔 오히려 좋았다.



해변에서 요가를 하니, 안에 수영복을 입고 가자고 했다. 요가 수업을 마치고 사진을 남긴 후에 잠시 차로 돌아갔다. 배고플 것을 대비해서 아이스박스 안에 삶은 달걀과 두유, 카스테라를 실어왔다. 새벽 요가 후에 먹는 아침은 꿀맛이다. 끝내주는 당충전을 하고 귀중품을 모두 차에 던져 넣은 후에 다시 해변으로 갔다. 수영은 젬병인 친구인데 물 뿌리는 에너지는 도사 수준이다. 물놀이를 가장한 물싸움을 하다가 둘 다 지쳐서 해변에 앉아 파도가 다리를 쓸고 지나가게 두었다. 공기는 따뜻한데 물은 찼다. 공용 화장실 앞에 있는 수도에서 대충 몸을 씻고 말린 후에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했다.


친구가 마실 커피를 내려두고 잠시 낮잠을 자라고 둔 후에 출근했다. 오늘은 체크아웃한 손님이 많아 객실 청소를 하는 날이다. 한 객실을 다 청소하기도 전에 온몸에서 땀이 났다. 마침 챙겨 온 손수건을 머리에 두건처럼 두르고 청소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이니 행복하다. 원래 집안 정리는 잘하지 않는 편이지만 여행을 하러 나오면 방 정리에 열심히인 편이다. 짐이 많지 않은 숙소에서 방을 치우고 정리를 하면 티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손님들이 좋은 시간을 보내고 나간 객실을 청소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뿌듯한 감정이 든다. 이불 커버를 모두 벗겨내고 최대한 각을 맞춰 정리했다. 


친구는 그 사이에 잠에서 깨어나 내 자전거를 타고 두모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연구를 해야 한다는 마음 때문인지 놀면서도 여유가 도통 없어 두모마을도 다 돌아보지 못했는데, 이 친구는 남해에 1박 2일 오면서 나보다도 두모마을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앞에 방파제까지 돌고 양아분교에 있는 강아지와도 친해졌단다. 자전거를 살방살방 타고 다니는 친구의 행복한 얼굴을 보니 나까지 행복한 기분이다. 객실 세 개를 정리하고 돌아오니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예정보다 한 시간 반 일찍 퇴근해서(다음 주에 시간을 채우기로 하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점심 메뉴는 예전부터 내 카카오 지도 어플에 찍혀있던 곳이다. 각종 장을 직접 담가 상을 차렸다는 '갯내음 식당'이다. 남해에 오면 꼭 한번 들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친구가 온 덕분에 방문할 수 있었다. 이곳 식당은 원래 펜션을 하던 곳인데, 지금은 식당이 더 유명하다. 장에 찐덕후인 사장님이 만든 곳이다. 밑반찬조차 대부분 직접 채취하거나 재배한 것들이라고 한다. 간장게장, 새우장, 전복장 등 각종 장류와 나물, 그리고 고등어구이가 나왔다. 간장게장 국물에다가 김을 찍어서 밥에 싸 먹으라는 사장님의 조언에 따라먹어보았더니 입안 가득 풍미가 퍼진다. 전부 장류라 짤만도 한데, 자극적으로 짠 것은 하나도 없고 재료 본연의 맛이 앞선다. 게다가 재료를 손질한 방식도 감동이었다. 간장게장은 살을 발라먹기 편하도록 집게발이 미리 부서져 있었다. 정성껏 담은 장을 끝까지 먹기를 바라는 사장님의 마음이겠다. 친구는 부모님을 모시고 오고 싶은 곳이라고 한다.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한식을 먹었으면 커피를 마실 차례다. 팜프라 식구들과 갔던 오아시스 카페에 친구를 데려갔다. 지난번에는 팥라테를 마셨는데, 이번에는 그다음으로 유명하다는 사탕수수 라테와 유기농 파넬라 라테를 주문했다. 파넬라는 유기농 사탕수수인데, 두 메뉴는 커피가 들어있는지 아닌지만 다르다.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다가 다시 바다에 발을 담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방을 카페 테이블에 올려둔 채로 바다로 갔다. 슬리퍼와 샌들은 해변 계단에 벗어두고 맨발로 모래를 밟아 파도와 우리의 간격을 천천히 좁혔다. 발목이 다 잠기게 걷다가, 마른 모래를 젖은 발에 묻히다가, 또다시 바닷물을 밟기를 반복했다. 송정솔바람 해변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다 오간 후에야 오아시스로 돌아왔다. 진한데 달지 않은 발로나 초코라테를 한 잔 더 주문해 마셨다. 이젠 서핑 덕후를 찾아갈 시간이다.



며칠 전에 문을 연 '남쪽계절'은 오아시스와 마찬가지로 송정솔바람 해변을 끼고 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있지는 않지만 해변에서 멀지 않다. 해변에서 서핑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는데, 이곳 사장님도 그 서퍼 중 한 명이다. 남쪽계절 사장님은 남해의 대표적인 N잡러 중 한 명으로, 팜프라촌의 멤버이면서 아마도책방 사장님이면서 남쪽계절의 사장님이기도 하다. 가게 앞에는 사장님이 직접 그린 귀여운 나무 입간판이 있다. 남해 생활을 접어볼까 하는 생각이 있던 무렵, 가기 전에 서핑은 한번 해봐야지 했는데 그 길로 서핑덕후가 되어 두 번째 책방을 열기까지 했단다. 인생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니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만끽하고, 해볼까 하는 것이 있다면 무조건 시도해 보는 게 정답 아닐까. 서핑과 관련된 그림책과 엽서북, 각종 소품이 가득한 공간이니 송정솔바람 해변에 갔다면 한번 들러보길 추천한다.



이날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책덕후, 목공덕후의 공간이다. 오래된 기와집을 사서 총 공사기간만 5년이 걸렸다는 책방 겸 카페 '흙기와'에 대한 이야기다. 팜프라촌에서 일하는 준호 님도 흙기와 사장님과 비슷한 시기에 귀촌해서 이곳의 공사에 손을 보탰다고 한다. 귀여운 손글씨로 쓴 작은 간판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공간이지만 알 수 없는 편안함이 깃든 곳이다. 책장, 테이블, 바닥 등등 하나하나에 사장님의 정성이 들어있다. 테이블 아래에는 키 작은 사람도 편히 앉을 수 있도록 발받침이 있고, 화장실에는 페이퍼타월 대신 소창행주를 하나씩 꺼내쓸 수 있게 되어있다. 새 책은 까만색 책갈피가 꽂혀 있고, 30% 할인하는 헌책은 빨간 책갈피가 꽂혀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책은 분야별로 나눠져있지 않고, 사장님 마음 가는 방식으로 정렬되어 있다. 책장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식으로 라벨이 붙어 있다. 흥미를 느꼈던 책이나 읽었던 책이 많이 겹쳐서, 모르는 책들도 왠지 내 취향일 것 같아 반갑고 재밌었다. 친구와 각자 생강차를 차고 따뜻하게 주문해 마셨다. 따뜻한 생강차는 귀여운 주전자에 담겨 나왔다. 마감 시간인 일곱 시까지 앉아있다가 순천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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